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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기사

번호 산 언론사 제목 날짜 산악투어
21 노산 사람과 산 노산에서 만난 찬란한 하늘바다 - 중국 산동성 노산 2013. 12월 호 산악투어 양걸석 대표 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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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태산 사람과 산 한국식으로 즐긴 가장 중국다운 산 - 중국 산동성 태산 2013. 11월 호 산악투어 양걸석 대표 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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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 태산 월간산 [해외 산행 | 중국 태산] 중국 태산 한국길 정식 개통! 2013.11월 호 산악투어 양걸석 대표 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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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태산 채널A 중국 타이산에 한국길 뚫렸다 2013.10.22 산악투어 양걸석 대표 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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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태산 The daily Focus 태산이 높다하되 하늘아래 뫼…中 타이산에 한국길 뚫려 2013.10.22 산악투어 양걸석 대표 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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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태산 연합뉴스 중국 5대 명산 타이산에 한국길 뚫려 2013.10.22 산악투어 양걸석 대표 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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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태산 조선일보 중국에 설악산 공룡릉? 泰山에 한국길 열린다 2013.09.11 산악투어 양걸석 대표 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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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태산 월간산 [중국 태산 새코스] 중국 태산에 한국길 열린다! 2013.08 산악투어 양걸석 대표, PEOPLE(인물)
[특파원 르포|중국 태산 새코스] 중국 태산에 한국길 열린다!
“절경 칼바위 능선에 안전 사다리, 난간 설치 공사 중
10월 말경 개통행사 예정…내년엔 구름다리도 가설 ”
중국 태산에 새로이 개설되는 코스인 한국길의 칼바위 구간을 가고 있는 취재팀. 태산여유처는 오른쪽 뒤편의 높직하고 긴 암릉으로도 코스를 잇는다는 계획이다.

중국 태산(泰山·1,532m)은 산이름이 갖는 상징성이나 유명도에도 불구하고 한국 등산동호인들에겐 그리 인기가 높지 않다. 무려 7,400개가 넘는다는 길고 지루한 정상 계단길 때문이다. 그래서 태산을 다녀온 동호인들은 한결같이 ‘다시는 안 간다’고 스스로에게 다짐하듯 되뇌이곤 했다.

7,000계단에도 불구하고 태산을 찾는 중국인들은 매년 500만 명을 넘는다고 한다. 중국인들이 가장 신성시하는 산이자 한 번 오를 때마다 10년은 젊어진다는 속설이 널리 퍼져 있어서다. 하지만 계단 기피증이 유별난 한국 등산동호인들이 무릎 통증을 감수하면서까지 태산을 반복해 찾을 이유는 없다. 과거 연간 10만 명에 달했던 한국인 방문객은 근래 5만 명까지 줄었다고 한다.

그러나 이제 누구든 다시 한 번 가지 않고서는 견딜 수 없는, 계단은 거의 밟지 않아도 될 절경 길이 태산에 탄생했다. 이름마저 한국길이니, 한국의 등산동호인이라면 누구나 한 번 와보시라는 뜻이 숨어 있다.


한국길 중간의 암반지대. 뒤편 능선의 오른쪽 끝에 불끈 솟은 암봉이 대천촉봉으로, 그 옆의 안부를 넘어서 코스가 이어진다.

이 길은 중국 관리들의 철저한 비즈니스 마인드와 잇속을 넘어선 자부심으로 중국 명산 새 코스 발굴에 몰두해 온 산악투어 양걸석 사장의 열정이 만나며 탄생했다. 양 사장은 중국 산둥성(山東省) 일원의 명산들을 두루 누비며 여러 산행코스를 개발, 한국 등산동호인들에게 소개해 왔다. 칭다오(靑島)나 위하이 같은 중국 동해안 대도시의 관광 관련 담당자들 사이에선 유명하다. 태산여유처는 이 양걸석씨에게 한국인 기호에 맞는 새 코스의 개발을 주문했고 그는 20차례에 가까운 답사 끝에 거의 완전히 새로운 등행로인 한국길 노선을 그려낸 것이다.

이게 실은 보통 일이 아니다. 태산이 어떤 산인가. 중국 5악 중 동악(東岳)으로 중국인들이 대대로 신성시해 왔고, 진시황제(秦始皇帝)를 비롯해 중국 역대의 많은 제왕이 하늘의 뜻을 받드는 봉선의식(封禪儀式)을 행했다. 봉선의식을 치렀던 대묘(岱廟)를 비롯해 천년 고찰과 사당, 비석 등이 발에 채일 만큼 많고 경관도 아름답다. 때문에 1987년 유네스코 복합유산, 즉 세계문화유산과 세계자연유산으로 동시에 지정되었다. 세계적으로도 이런 산은 드물다. 여기에 새로운 등산코스를 내는 일은 그러므로 중국 중앙정부의 허가까지 필요한 까다로운 일이다. 태산여유처와 태산을 진산으로 삼고 기댄 태안시 당국은 이 복잡한 절차를 밟으면서까지 자국민이 아닌 한국인 양 사장에게 새 코스 개설을 일임한 것이다.

진시황이 하늘의 뜻 받들고자 올랐던 길

양 사장과 이 길을 동행 답사하고자 7월 4일 칭다오행 위동페리에 올랐다. 양 사장이 오랜 등산꾼들의 감각적 판단을 원해, 평택 지역 등산붐을 일으킨 주역인 장익진씨(평택노스페이스 대표)와 최민희, 이응노씨, 천안·아산 지역에서 산행대장으로 등산동호인들을 이끌어온 한편 요즈음에도 한 달에 보름 이상은 산행을 하는 맹렬 산꾼 맹헌영씨, 영월악우회 김장섭 회장, 그리고 강릉 바우길 개척을 이끈 바우길 탐사단장 이기호씨 등이 동행해 평점을 매기기로 했다. 항공기로 휙 갔다가 오면 멋이 없다는 중론에, 4박5일 여정으로 위동페리를 탔다.


태산 주등산로의 계단길 옆 소나무 가지 사이에 중국인들이 무언가 경구를 새겨넣은 바위를 끼워두었다. 한국길은 도중에 짧은 거리만 계단길을 이용하게 된다. (아래) 태산 정상 능선의 넓은 공터에서 무언가 의식을 진행하고 있는 중국인들.

태산의 주등행로인 7,000계단길은 정남향으로 낸 중천문~남천문~옥황정 코스다. 양 사장은 이 복잡한 구간의 인파를 피하는 한편 절경 암봉과 암릉을 두루 구경할 수 있는 정상 동쪽 지역에 한국길을 냈다.

물론 태산에 그간 7,000계단길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 이외의 정규 등산로는 천촉봉(天燭峰) 코스, 도화곡(桃花谷) 코스 등 서너 가닥에 불과하고 경치가 워낙 떨어져 대다수 사람들이 외면해 왔다. 비정규 등산로가 여러 가닥 나 있기는 하지만 안내판도 없고, 적발되면 적잖은 벌금을 물리므로 또한 극소수 사람들만 이용해 왔다. 이런 상황에서 태산 한국길은 한국인뿐 아니라 중국의 등산 마니아들도 눈이 번쩍 뜨이는 길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양 사장이 확정한 한국길은 태산 정상 옥황정의 동북동쪽(2시 방향)의 ‘중화태산봉선대전’이란 황제 행차 재연 행사장에서 시작해 배산대(拜山臺)를 거쳐서 올랐다가 U자를 그리며 동남동(4시 방향)의 직구저수지(直?水?·즈커오스위쿠)에서 끝난다. 이 한국길의 특징은 계단을 거의 밟지 않는 자연 속의 길이라는 것, 그리고 설악산 공룡릉이나 용아릉의 일부를 연상시키는 멋진 암릉길이 포함돼 있다는 점이다.

그러나 중간에 높이 150m의 거대한 절벽 협곡으로 길이 끊어진다. 이 협곡에 양 사장은 구름다리를 놓아야 한다고 했고, 태산여유처는 내년에 설치하기로 결정했다. 이 구름다리 자체가 거대 협곡을 조망하는 멋진 조망처가 될 것이란 양 사장의 말이다.

무엇보다 핵심적 경관지는 동남동 직구저수지 방향 능선의, 양 사장이 ‘칼바위’라 지칭한 암릉 코스다. 북한산 망경대 암릉길과 흡사한 이 바윗길 중간에는 아찔하고 위험한 구간이 몇 군데 있다. 태산여유처는 이 지점들에 쇠사다리나 안전 난간을 설치하기로 하고 작업에 들어갔다. 아마도 10월 중순이면 난간 공사는 끝날 것 같다고 한다.


(왼쪽)대천촉봉 안부에서 망원렌즈로 당겨본 소천촉봉. 하늘 촛대라는 이름답게 우뚝하고도 높게 솟았다. / 하산을 마치기 직전 길가에서 바라본 직구저수지. 저수지 댐 아래의 널찍한 물웅덩이에서는 사람들이 수영을 즐기고 있었다. / 한국길 칼바위의 천장바위 아래를 지나고 있는 취재팀의 이응노씨. 사방 조망이 장대하고 아기자기하며 짜릿한 스릴도 있어 한국 등산마니아들의 기호에 딱 맞는 코스다.

‘티끌 모아 태산’, ‘걱정이 태산’, ‘보릿고개가 태산보다 높다’, ‘앉아서 먹으면 태산도 못 당한다’ 등, 태산과 관련된 여러 속담이나 격언을 통해 우리의 뇌리에 형성된 태산의 이미지는 두루뭉수리 높직한 것이었던 모양이다. 때문인지 차장 밖 저 멀리로 태산의 실루엣을 첫 대면하는 순간 “야, 설악산 같은 바위산이네!” 하며 몇 사람이 놀랐다.
옥황정이 올라앉은 태산 주봉의 높이는 1,532m, 총면적은 426㎢로 지리산과 비슷하다. 이 지리산 비슷한 넓은 지역 사방으로 병풍 같은 거대 암릉들이 펼쳐졌다. 설악산처럼 암릉이나 암봉이 오밀조밀한 멋은 없으나, 대신 넓고 시원스러운 암릉 풍치를 펼쳐낸다. 대체적으로 불그스레한 빛이 짙은 화강암이어서 마침 노을빛을 받은 정상부는 붉게 달아오른 쇳덩이를 연상케 했다.

하늘 촛대봉 등 기암봉 사이로 코스 개척

위도가 36도선으로 전라남도 지역과 비슷하고 바다가 먼 내륙이어선지 아직 7월 초순인데도 웃통을 벗어젖힌 ‘가죽옷 입은’ 남자들이 곳곳에서 보였다. 구름 한 점 없는 쾌청한 날씨일 것이란 내일 낮이 덜컥 두려워져, 우리는 아침 5시30분경부터 산행을 시작하기로 했다.

그러나 태산여유처 직원들이 부어 주는 고량주를 원샷으로 몇 잔 들이킨 사람들은 서늘한 기운이 도는 새벽부터 비지땀을 쏟았다. 일단 등행길은 태산경구 진어도유람(泰山景區 秦御道遊覽) 코스를 일부 따랐다. 진어도를 영문으로 ‘Qin Emperor Route’라 표기했으니, 아마도 2,200여 년 전 진시황제가 이 길로 하여 정상 옥황정을 올랐던 모양이다.

애와촌(艾?村)을 출발, 황제 행차의식을 재현하는 무대가 위에 꾸며진 인조 암벽 앞에서 왼쪽의 계곡가로 내려서서 길을 따라 매표소 앞에 이르자 곧 태산여유처 직원 2명이 나타났다. 이들은 오늘 양 사장이 짚어 주는 조망대 자리를 확인하고자 동행하는 것이다.

진시황이 저 앞 천촉봉(天燭峰), 곧 하늘 촛대봉을 우러르며 절했다는 곳인 배산대(拜山臺)에서 등산로를 버리고 풀이 수북한 산길로 접어들어, 계곡을 가로질러 막은 철망의 철문에 다다랐다. 요즘은 정규 등산로 이외의 출입을 엄격히 막고 단속도 한다고 한다.

1시간여 비지땀을 흘린 끝에 태산 동쪽 일대의 전모가 펼쳐지는 능선 위 조망처 망태령(望太嶺)에 올랐다. 여기가 우선 조망대를 설치할 곳이다. 능선을 따라 나아가다가 저 앞의 천촉봉 오른쪽 옆 안부로 오를 것이라 한다. 몇 사람이 ‘이 무더위에 저 아마득한 데까지!’하는 표정으로 바라본다. 하지만 계속 숲길이었고 이른 아침의 선들바람도 불어서 또한 1시간여 만에 대천촉봉 북쪽 안부에 올라섰다. 시원한 통바람이 넘나들고 멀리 정상부까지의 장대한 대암벽이 바라뵈는 이곳에도 넓은 조망대를 설치할 것이라 한다.

저 앞에 또한 뾰족하니 솟은 바위는 소천촉봉. 이미 해는 중천에 떴고 숲이 벗겨진 암봉 기슭을 돌아 나아가는 동안 비지땀이 온몸을 적셨다. 한여름 태산 산행은 케이블카를 탈 작정이 아니면 생각도 말아야 할 것이다.

2시간30여 분 걸었을까. 진어도(秦御道) 코스의 주등산로 계단으로 나섰다. 마침 매점이 있어 이온음료를 사서 한 통씩 챙겼다. 포카리스웨트 같은 것이 10위안(2,400원)이다.

시원한 그늘 계단길을 따라 소천촉봉 조망대, 고송원(古松園)이란 팻말 지나 길을 버리고 다시 숲속 샛길로 들어섰다. 거대한 노송들이 패찰을 매달고 숲속 여기저기 검은 몸을 드러낸다. 우리네 소나무처럼 줄기가 붉지 않고 검어서 멋은 덜하지만 시원스런 맛은 괜찮은 편이다.

목제 조망대 예정지, 구름다리를 걸칠 지점을 보고 너덜겅 지나 기진맥진 정상 능선에 올랐다. 수많은 사람들과 어울려 옥황정에 올랐다가 그 아래 커다란 호텔을 보니 기가 막힌다. 아까 계단길을 가벼운 차림으로 내려오던 이들은 여기서 하룻밤을 묵었던 것이다. 무더위 속에 케이블카가 유혹했지만, 한국길의 핵심인 칼바위 능선으로 향했다.

솔바람 부는 잣나무숲엔 샘터도

태평대란 조망처로 빙 돌아 나오는 주탐승로 중간에서 샛길로 빠진다(좌표 N36 15 14 E117 06 31). 솔바람 부는 송림을 지나고 널찍한 잣나무 숲 아래에선 잠시 낮잠도 즐겼다. 여기서 숲속 150여 m 저편의 샘터로 가서 시원한 물을 떠와 실컷 마시기도 했다. 해발 1,240m 지점으로, 태산에서 가장 높은 데서 솟는 샘이라 한다.

본격적인 암릉이 시작되는 지점(좌표 N36 15 03.6 E117 07 05.0)은 그냥 지나쳤다. 여기서부터 약 600m 길이의 첫 번째 암릉이 이어지는데, 노모석(老母石)이 있는 안부로 내려서는 구간이 너무 위험해서다. 사다리 설치가 끝나는 10월 중순까지는 거대 암벽 밑둥을 가로질러야 한다. 노모석은 여기 멀리서 보니 영락없이 머리에 무엇을 인 여인 형상이다.


(왼쪽)한국길 칼바위 능선의 재미를 즐기며 가고 있는 취재팀의 이응노씨(앞)와 김장섭씨. / 태산 남쪽 조망이 펼쳐지는 조망대에 모여선 취재팀(뒷줄 가운데가 개척자인 양걸석 산악투어 사장). / 한국길 산행시작점의 관리사무소 앞 휴게공간.

안부에 도착해서 더위를 식혔지만 바람이 신통치 않다. 여인상 근처 반반한 바위에는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아는 ‘태산이 높다 하되 하늘 아래 뫼이로다…’하는 양사언의 시조도 새겨둘 것이라 한다.

땀이 잦아든 뒤, 설레는 마음으로 칼바위 암릉에 붙었다. 시작지점 오르기부터가 까다로운데, 이곳 역시 사다리를 가설할 것이라고 한다.

암릉에 오르자 비로소 기대했던 절경이 펼쳐졌다. 직접 오르기 전까지 상상했던 것 이상이라며 다들 환호한다. 양쪽으로 길고 장대한 암릉들이 내리닫고, 북쪽으로는 그야말로 태산 같은 덩치와 기운으로 태산이 몸을 일으키고 있다. 기막힌 조망과 시원한 바람이 어울린 칼바위 능선을 일행은 걸음을 아껴가며 걸었다. 중간에 오금이 저리는, 양쪽이 급경사인 지점도 여럿이니 사다리가 놓이기 전까지 초심자는 절대로 가면 안 될 것이다.

암릉이 끝나고 저수지 옆으로 내려서기까지의 길도 가파른 바윗길이어서 자칫하면 크게 다칠 위험이 높다. 그러므로 칼바위를 가려면 반드시 마찰력이 좋은 리지화를 신는 것이 상책이다.

능선이 끝나고, 절인 듯한 건물도 선 계곡에 내려서서 탁족을 한 다음 마무리 길에 접어들었다. 곧 푸른 물이 그득한 직구저수지 옆을 따라 가다가 철문을 나서자 관리인이 기다렸다는 듯이 철컥 자물쇠를 채운다. 우리 뒤로 한국길 칼바위는 다시 한동안 정적 속에 잠겨 있을 것이다.


중국 태산 한국길 개념도

길잡이

케이블카 포함한 칼바위 산행 추천할 만

태산 한국길은 사다리, 철책 등 안전시설과 안내판 설치가 끝나는 10월 말경 개통된다. 태산여유처와 월간산, (주)산악투어, (주)아웃도어파트너스 공동으로 개통행사를 진행하며, 총 2,000만 원의 상금이 걸린 태산 사진촬영대회도 겸한다.

구름다리가 놓이기 전까지는 황제 행차 행사장~배운대~망태령~계단길~정상~ 칼바위~직구저수지~상리원촌(上梨?村)으로 산행을 이어가야 한다. 이렇게 돌면 총 12km에 걷는 시간만 8시간쯤 잡아야 한다. 구름다리가 놓이면 7시간 정도로 가능할 것이다.

황제 행차 행사장~정상 구간도 대천촉봉 안부 등, 뛰어난 조망처가 있으나 양자택일한다면 단연 칼바위다. 그러므로 체력이 달리는 사람은 케이블카로 올라 칼바위로 하산하는 코스를 가장 추천할 만하다.

칼바위 암릉 끝에서 직구저수지로 하산하는 내리막 구간의 바위지대도 경사가 만만치 않다. 안전 위주로 길을 선택한다면 직구저수지에서 칼바위 쪽으로 올라간 다음 정상 구경 후 케이블카로 하산하는 것이 좋다.

칼바위 길 중간 잣나무숲지대에 샘이 있으나 수량이 넉넉지 않으므로 믿지 말고 물을 충분히 준비해 간다. 한겨울에는 눈이 깊이 쌓이므로 칼바위길은 위험하다. 태산여유처는 칼바위길 안전 산행을 위해 당분간은 산악투어의 확인을 받은 팀에 한해 칼바위길 통행을 허용할 방침이라 한다.

태산 한국길 여행상품은 위동페리를 이용한 4박5일, 항공기편을 이용한 2박3일 두 가지가 일반적이다. 산악투어는 개통식 행사(10월 10일 오전) 참가를 원하는 동호인들을 위해 10월 9일 휴일(한글날)을 포함한 10월 8~12일 4박5일 특별 패키지상품을 판매한다. 요금 40만 원 안팎. 문의 산악투어 전화 02-730-0022.


/ 조선일보 월간산 / 글·안중국 편집인 | 사진·맹헌영 산악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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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황산,태항산 한국관광신문 [산악투어] OZ-트레킹 4박6일/ 위동훼리-트레킹 5박6일 2013.03.29 산악투어 양걸석 대표 개발
[산악투어] OZ-트레킹 4박6일'/ 위동훼리-트레킹 5박6일
“양걸석 (주)산악투어 대표”

꽃피는 봄, 중국 명산으로 떠나볼까?
중국 3대 절경 중 하나로 국내 산과는 또다른 매력을 뽐내는 황산, 대협곡 지형으로 남다른 스케일을 자랑하는 태항산. 유난히 추웠던 지난 겨울을 잊고 올 봄은 산악투어가 소개하는 중국 명산을 따라 색다른 봄을 느껴보자.

[산악투어] 황산 OZ-트레킹 4박6일
아시아나항공을 이용한 남창/무이산/삼청산/황산 트레킹 주요 일정은 ▲무이산 천유봉(408.8m) 트레킹 3시간 ▲삼청산 옥경봉(1817m )트레킹 6시간 ▲ 황산 연화봉(1864m)트레킹 그리고 등산으로 지친 발을 풀어주는 발마사지로 구성됐다. 산악투어에서 구성한 이번 일정은 중국의 어느산에서도 느낄 수 없는 기상천외한 등산코스로 구성돼 마치 무협지 속에 들어와있는 착각이 들정도로 흥미로우며 무이산을 아홉구비로 휘감아 흐르는 구곡계는 계림에 버금가는 아름다운 경치와 대나무 뗏목을 타고 내려오는 일정은 여행객들에게 또다른 재미를 선사한다.
마지막 일정에 포함된 황산은 중국 3대 절경중 하나로 황산을 보고나니 오악이 눈에 차지 않는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웅장하며, 천길 낭떠러지 바위 암릉과 김암괴석으로 이루어진 명산이다. 또한 케이블카를 이용해 보는 황산의 절경은 단연 으뜸으로 보는이로 하여금 눈을 뗄 수 없게 만든다. 황산트레킹은 옥병 케이블카 등정을 시작으로 ▲영객송 ▲천도봉(조망)▲옥병루 ▲연화봉 ▲오어봉 ▲천해(중식)▲보선교(왕복) ▲광명정 ▲비래석▲배운정 ▲서해대협곡 ▲몽필생화 ▲시신봉 ▲운곡케이블카로 하산하는 일정이다.
출발기간은 4월 1일부터 10월 25일까지로 최소출발인원은 15명이다. 아시아나항공을 이용하며 인천공항에서 오후 8시 15분 출발, 남창공항에 오후 10시 35분에 도착한다. 복편은 오후 11시 50분 출발, 오전 4시 10분 인천공항에 도착한다. 왕복항공권, 호텔(2인 1실), 차량, 식사, 입장료, 케이블카(왕복)이 포함되며 유류할증료, 중국단체비자비, 팁은 불포함이다.

태항산 한왕트레킹의 주요 일정은 ▲도화곡 대협곡, 태왕대협곡, 왕상암 트레킹 ▲태왕산 한왕트레킹, 석애구 관광대, 화룡 통천로 ▲5.4 광장, 소어산 관광 등이다.
멋진 선상여행의 추억과 트레킹까지 경험할 수 있는 이 일정은 산악투어가 단독 개발한 최고의 트레킹 코스로, 한왕트레킹이 포함되어 있어 꾸준한 인기몰이 중이다. 한왕트레킹은 태항입구-외돌개-암복석림-목긴 여인상-코끼리봉-만인석-천주쌍봉-왕망령 관일대의 코스로 구성됐으며 가장 멋진 절경을 감상할 수 있는 최고의 핵심코스를 자랑한다. 편도 5시간 30분이 소요되며, 태항입구에서 정상인 왕망령 관일대까지만 트레킹으로 올라가고, 하산은 정상에서 차량으로 한다. 태항입구에서 태항산의 병풍처럼 펼쳐진 기암절벽을 보면서 왕망령에 올라 기암괴석 기암괴복의 절경을 감상하는 트레킹코스로 계단보다는 옛길과 목축로 등 흙길로 되어 있다. 트레킹 후 이동하는 석애구 관경대는 해발 700~800m의 웅장하고 아름다운 홍암절벽을 감상할 수 있는 곳으로, 깎아지른 거대한 홍암절벽은 잊지 못할 장관을 선사한다.
또한 회룡통천로는 태항산 절벽위에 사는 고립된 사람들이 바깥세상과 통할 수 있는 유일한 길로, S자 모양의 터널로 만들어져 있다. 해발 1000m의 절벽에 1997년부터 2000년 동안 3년에 걸쳐 뚫은 이 터널은 장영쇄라는 촌장이 개인 돈을 들여 만든 터널로 하나의 관광명소로 자리매김했다. 출발기간은 4월 4일부터 8월 31일까지로 최소 출발인원은 20명이다. 왕복선박료(다인실), 호텔(2인1실), 식사(선내식 4회포함), 입장료, 차량, 가이드, 항만세, 해외여행보험을 포함하고 있으며, 유류할증료(40,000원), 전 일정 팁(현지 기사 및 가이드) $40/인 권장, 중국단체비자비는 불 포함 사항이다.

/ 한국관광신문 / 권지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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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태항산 한국관광신문 장가계가 아름답다하되 태항산 아래 뫼이로다. 2013-03-23 산악투어 양걸석 대장 개발
장가계가 아름답다하되 태항산 아래 뫼이로다...
“양걸석 (주)산악투어 대표”
한때 조선의용군이 조국의 해방을 위해 은밀히 군사훈련을 실시했던 중국 태항산(太行山).

이곳은 중국어로 타이항산맥이라고도 부른다.

미국에 그랜드캐년이 있다면 아시아에는 태항산이 있다 할 정도로 마치 신이 자연을 대상으로 그림을 그린 붓의 흔적이 역력하다.

최근 과학계에서는 미국의 그랜드캐년이 구약시대 노아의 홍수 사건으로 만들어진 흔적이라고 주장하고 있는데 태항산 역시 거대한 물살이 휩쓸고 지나간 흔적을 눈으로 확인 할 수 있다.

한국에서 가까워 더욱 좋은 이 곳 태항산의 흙을 직접 밟고 지나가 개척한 양걸석 (주)산악투어 대표는 태항산의 전도사라 불릴 만큼 국내에서 태항산 최고 전문가로 통한다. 어떤 매력을 담고 있는지 알아본다.

태항산 지도? 양 대표 머리 속에
사회주의 국가인 중국에서 산악 지도를 찾는 다면 한마디로 ‘바보’같은 행위다.

그들의 정치적 입장에서 보면 이해할 수 있는 대목이다. 하지만 양 대표의 머릿속엔 태항산 곳곳의 지형이 담겨져 있다.

태항산 트래킹 코스만 무려 15개 이상을 보유한 산악투어의 경쟁력이다.

“하나의 코스를 개발해 상품으로 출시할 때까지 10회 이상 현지답사를 한다. 산악전문 기자들과 최종 답사를 마치고 몇 차례 더 방문하기 때문에 산악투어만이 갖고 있는 태항산의 매력을 맛 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하는 양 대표의 山사랑은 10여 년 전 과거로 거슬러 올라간다.


1998년 설립된 산악투어는 그동안 다양한 여행 상품을 통해 자리를 잡아왔지만 양 대표는 특히 중국 지역 명산 투어에 관심이 높았다.
우선 워낙 광범위한 지역에 걸쳐 있는 중국의 산들은 동남아 혹은 국내 명산들과 달리 인간의 손 떼가 덜 묻어난 야생 그대로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다.
간혹 명산이라고 불리는 관광코스를 가보면 계단 몇 개 놓고, 오르락 내리락하면 끝이 나는 상품들이었다.


이런 현상을 보며 양 대표는 “개인적으로 산악 트래킹을 좋아하기도 하지만 한국인들에게 깊이 있는 관광 상품으로 개발해 알려주고 싶었다”며 “최근에는 등산 매니아 뿐 아니라 일반인들의 관심도 높아지고 있어 트래킹과 관광을 동시에 만끽 할 수 있는 다양한 가격대별, 일정별 상품이 인기를 끌고 있다”고 말했다.

한국인 정서에 맞는 조망코스 개발
최근 태항산은 장가계 이후 가장 뜨거운 지역으로 각광받고 있다.


우선 한국인들의 취향에 맞는 조망권 확보와 우스게 소리로 열 발자욱 지날 때 마다 감탄사가 터져 나올 정도라는 후문이 자자하다.

남한 전체 크기와 비슷한 태항산은 남북길이 약 600km, 동서길이 250km에 걸쳐있는 험준한 산맥으로 전문성을 지니지 않고서는 상품 개발 자체가 불가능한 곳이다.

등산 코스와 관광코스 두 가지를 경험할 수 있는 코스는 각종 기암괴석과 협곡들로 이뤄져 있으며 등산에 대한 욕심을 조금 더 내본다면 관광코스에서는 못 느꼈던, 가보지 않은 이들은 그 풍광의 깊이를 느낄 수 없는 명장면이 눈앞에 펼쳐진다.

또한 등산에 대한 부담을 느끼는 이들에겐 산악투어가 제공하는 태항산 프로그램에 맞춰 즐길 수 있다.

양 대표는 “트래킹을 즐기는 이들의 체력과 경험, 연령대에 맞춘 다양한 상품 구성으로 남녀노소 할 것 없이 태항산을 경험 할 수 있다”고 밝혔다.

국내 유일의 山전문 랜드로 입지 다져
산악투어의 태항산 일정을 자세히 살펴보면 태항산 풍경에 어울리게 꼼꼼한 구성과 한편의 여유로운 휴식이 눈에 띤다.

일정 구성에 대해 ‘대충’이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양 대표의 흔적이 담겨 있는 일정이다.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국내 유일의 山을 전문으로 하는 업체답게 다이나믹함과 여유로움이 함께 존재한다고 밝히고 있다.

산동성과 산서성을 구분 짓는 기준점이 되고 있는 태항산을 올해 더 많은 한국인들에게 알릴 계획인 양 대표는 단순히 태항산을 산악투어의 주력상품으로 꼽지는 않고 있다.

山자체에 대한 애정이 가득한 그는 올해는 노산과 태산을 비롯해 중국지역의 명산들을 더 둘러볼 계획으로 특히 중국의 오악(五岳) 중에서도 으뜸으로 꼽히는 태산(太山)과 중국 청도의 노산 등 새로운 상품을 선 보일 계획이다.

특히 올해는 산동성 자치구에서 지정한 ‘등산의 해’로 더욱 많은 이들을 유치해 진짜 ‘절경’이 무엇인지 한국인들에게 전파한다는 계획을 갖고 있다.

양 대표는 “올해 등산 대회와 등산 축제 등 다양한 행사들이 현지에서 열릴 예정이다. 하지만 1등만을 뽑는 대회보다는 진정 산을 즐길 수 있는 축제 성격의 상품들 위주로 선보일 예정이며, 이러한 기회를 통해 더 많은 사람들이 산과 진정한 호흡을 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 한국관광신문 / 이정민기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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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대청도 조선일보 대청도 삼각산 2012.12.13 산악투어 양걸석 대장 개발
바위는, 바다를 마주하고 바람을 껴안았네
“인천 대청도 삼각산”
옹진 대청도 삼서 트레일 코스의 절경지 중 하나인 마당바위. 널찍한 완경사의 갯바위 지대로, 손꼽히는 해상 절경이다. / 김승완 영상미디어 기자

서풍받이의 장대(將臺)처럼 튀어나온 조망처에 서자 대륙에서부터 몰아쳐온 북새풍에 갑자기 숨이 턱 막힌다.

겨울 인천 옹진군 대청도에서는 이 바람을 기꺼이 감수해야 한다. 바다를 건너온 바람이 큰 파도를 일으켜 누천 년간 절벽을 조탁하지 않았다면 이와 같은 절경이 탄생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갑자기 쥐죽은 듯 숨죽이는 바람. 비로소 편히 어깨를 펴고 주위를 돌아본다. 왼쪽은 줄잡아 100m는 넘어 뵈는 거대한 바위 병풍이고, 오른쪽은 하늘에 쐐기 박듯 치솟은 상어주둥이 형상의 암봉. 그 아래로 광막한 바다가 펼쳐졌다. 이 풍경에 시선과 마음이 묶이면 아무리 바람이 거세어도 오래도록 머물 수밖에 없다.


대청도 삼각산 정상에서 바라본 소청도 실루엣. 초겨울 오후 햇살이 섬 주변 해수면을 비추고 있다.

저기 남쪽 바다에 거문도 불탄봉~보로봉 길이 손꼽히는 해상 절경으로 펼쳐져 있다면, 여기 중부 이북지방엔 대청도 서풍받이 길이 있다. 저울대에 걸어본다면 정확히 수평을 이루겠다 싶게 대청도 길도 풍광이 뛰어나다. 이 길은 새 트레킹 루트 찾아내기에 미련스럽도록 골몰해 온 산악투어의 양걸석 대장에 의해 탄생했다. 그는 대청도 최고봉인 삼각산 길에 서풍받이라는 절경지를 이었다고 하여 '삼서 트레일'이라 이름 지었다.

이 대청도 삼서 트레일은 수도권에선 1박2일이면 다녀올 수 있어 새로운 섬 풍경에 목말랐던 이들에겐 희소식이 될 것이다. 인천항에서 3시간 20분 만에 가 닿고 어지간한 풍랑에도 운항을 하는 2000t급의 대형 쾌속선 하모니플라워호가 지난 7월부터 운항을 시작, 일정에 차질이 생길 우려도 크게 줄었다.

대청도 선진포선착장의 바다식당에서 성게 비빔밥으로 요기하고 바로 트레일 시작점으로 향한다. 섬산은 멀리서 보면 늘 볼품이 없다. 이곳 대청도 삼각산(343m)도 마찬가지로, 야트막하게 누워 보인다. 하지만 산릉 너머 대양(大洋)의 파도가 부딪치는 어딘가에 절경을 숨기고 있는 것이다.

삼각산은 짙은 숲 속으로 우선 일행을 이끈다. 휘고 뻗어나간 각도와 모양새가 예측불허로 자유분방한 소사나무들이 빽빽이 들어선 숲 저편으로 푸른 바다가 자잘하게 쪼개지고 있다. 소사나무 줄기는 매끈하고, 그것이 이룬 공간 또한 말끔한 맛이 있다.


첫 번째 조망처에 이르러 걸음을 멈춘다. 오후 햇살이 역으로 비추자 삼각산릉은 바다 위에 거무스름한 윤곽선으로 엎드린다. 그 끝, 숫제 녹아서 함몰될 듯 강렬하게 햇살이 반사되는 해수면과 상어 이빨 같은 예각의 모서리를 드러낸 서풍받이 능선 끄트머리가 겹쳤다.

밋밋한 둔덕을 이룬 삼각산 정상에 올라서자 넙적 엎드린 하마 모양으로 소청도가 떠오른다. 소청도는 면적이 2.9㎢로 대청도에 비해 5분의 1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등 뒤로 고개를 돌리면 거기엔 백령도가 큰 덩치로 일어선다. 백령도는 대청도보다 몇 배 큰 섬이다.

팔각정자가 선 일주도로에 내려선 다음 대청도 남서쪽 끝머리 마당바위를 향한다. 완경사로 넓고 평평하게 섬 꼬리께를 에두르며 넓적한 띠처럼 펼쳐진 마당바위는 시퍼런 바닷물이 배경이어서 더 밝고 따듯하게 느껴진다.

"이런 데선 한참 놀면서 쉬었다 가야 하는데!"

누군가 항의하듯 외쳤지만, 동행한 양 대장은 못 들은 척 산봉 위로 발걸음을 뗀다. 서풍받이 노을이 진짜라며.

서풍받이에 다다르자, 태양이 수평선 위로 막 내려앉고 있다. 잿빛 이내의 층을 녹이며 사방으로 붉은 기운을 화염처럼 퍼뜨리고 있다. 그 막막한 풍경에 숨결도 곧 평온히 내려앉는다.

여행 수첩

대청도 최고봉 삼각산과 서풍받이 일주길을 이은 삼서 트레일은 조망 좋은 곳마다 쉬면서 걸어도 총 7km에 4~5시간이면 된다. 다만 기자가 취재를 다녀온 뒤 대청도에도 전례 없는 폭설이 내려, 11일 현재 산길이 막혀 있으며 일주일쯤 지나야 길이 뚫릴 것이라 한다. 길이 뚫린 뒤라도 아이젠은 반드시 챙겨야 한다.

노약자는 서풍받이 쪽만 한 바퀴 도는 것이 좋다. 삼각산 정상에서 서풍받이 쪽 내리막길이 좀 가파르다. 대청면에서 내년 봄쯤엔 계단을 놓을 것이라 한다.

삼서 트레일의 3대 조망처는 삼각산 정상 전의 330m봉, 섬 남서쪽 꼬리의 갯바위지대 마당바위, 그리고 서풍받이다. 서풍받이는 한낮보다 노을 무렵의 풍치가 한결 좋고, 마당바위는 오후 한나절이 으뜸이다. 마침 여객선의 대청도 도착 시각이 점심때이므로 오후 한나절 산행을 하면 각 명소마다 딱 알맞은 시간에 다다르게 된다.

대청도 삼서 트레일과 농여해변 트레일, 기름항아리바위 조망대 구경 등 대청도만 돌아보는 데는 1박2일이 좋고, 여기에 백령도 해안풍경 관광까지 겸한다면 2박3일 일정이 딱 알맞다. 여러 여객선이 인천항~소청도~대청도~백령도 구간을 매일 왕복하므로 언제든 날짜만 잡으면 된다. 다만 토~일요일 배편은 종종 만원사례이므로 미리 예약해야 한다. 산악투어(02-730-0022)는 여객선 중 최고 속도인 하모니플라워호와 특약을 맺고 대청도 삼서 트레일 1박2일이나 대청도·백령도 2박3일 여행 상품을 취급한다.


/ 조선일보 월간산 / 글·안중국 월간 山 편집장, 사진·김승완 영상미디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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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대청도 월간산 대청도 삼서트레일 2012.12월호 산악투어 양걸석 대표 개발
[섬산행 | 대청도 삼서트레일] 마당바위, 서풍받이…그 꿈에서나 볼 것 같았던 풍경들
“새로운 섬풍치에 목말랐던 이들에 희소식…1박2일이면 너끈한 일정”

남해 바다 한가운데 거문도의 불탄봉~보로봉 능선 서안 절벽은 만약 세계 100대 절경을 꼽는다면 그중 하나에 들 것이 분명하다 싶을 정도로 경치가 빼어나다. 다만 수도권 사람들로선 거리가 멀어서, 여기를 다녀오려면 작심하고 삼사일은 시간을 내고 경비도 적잖이 마련해야 한다는 부담이 있다. 그래도 많은 사람들이 이곳을 찾았던 이유는 “안 가보면 늙어 후회한다”는 주위의 협박이 만만찮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제 그 거문도 서안 절경과 나란히 놓아도 좋을, 사람에 따라서는 그보다 수승하다고도 할 트레킹 루트가 대청도에서 개발되었다. ‘개발되었다’는 표현은 좀 뭣하다 싶다. 그 길의 흐름이 오래 전부터 존재해 왔던 게 아닐까 싶을 만큼 자연스럽기 때문이다. 아무튼 수도권에선 1박2일이면 다녀올 수 있는 여건이어서 그간 새로운 섬풍경에 목말랐던 이들에겐 희소식이 될 것이다.


▲ 노을 무렵 서풍받이 절벽 위에 선 사람들. 모진 북서풍과 그로 인한 노도를 누천 년 온몸으로 받아온 절벽이다.

이 길은 새 트레킹 루트 찾아내기에 미련스럽도록 골몰해 온 한 사람에 의해 탄생했다. 산악투어의 양걸석 대표다. 그는 중국 동쪽 해안 지방의 노산이며 태산, 태항산 등에서 새로운 길을 찾아내어 공개해 왔는데, “이번엔 대청도에서 눈이 번쩍 뜨이는 새 코스를 찾아냈다”며 본지에 제보해 왔다. 양 대표는 “대청도 최고봉인 삼각산에 이어 서풍받이라는 절경지를 이었다고 하여 삼서 트레일이라 이름지었다”고 했다.

대청도는 북한과 인접한 이른바 황해 5도 중 하나다. 인천광역시 옹진군에 속해 있긴 해도 인천항에서 거리가 만만치 않다. 200km쯤 되는 사뭇 긴 거리인 데다 대해로 나가면 종종 풍랑이 치곤 해서 선편이 취소되기 일쑤였다. 이 인천~대청도 간에 JH페리 소속의 쾌속선 하모니플라워호가 지난 7월부터 취항하며 소요시간과 풍랑의 문제가 동시에 해결되었다. 그간 운항하던 배보다 속도가 한결 빨라서 시속 75~80km(선사 측에서는 세계에서 세 번째로 빠른 여객선이라고 한다)로 달려 3시간30분이면 대청도에 닿고, 크기도 기존 여객선보다 서너 배쯤 큰 2,000톤급이어서 어지간한 풍랑에는 끄떡없이 운항한다.

가는 날, 바다는 내륙의 호수처럼 고요해, 한숨 자고 나니 어느새 대청도다. 선진포선착장의 바다식당에서 성게비빔밥으로 요기하고 바로 트레일 시작점으로 향했다. “두어 시간이면 한 바퀴 돌 수 있지만, 구경도 제대로 하고 사진촬영도 하려면 출발을 좀 서둘러야 한다”는 양 대표 말이다


▲ 삼각산 정상으로 이어지는 능선길 중간에는 짤막한 바위지대가 두엇 있다.

2시 반쯤 엘림민박 버스에서 내려 산길로 접어든다. 이파리가 떨어진 나뭇가지들 사이로 잘게 부서지는 늦가을 햇살에 한여름의 맹렬함은 간 곳 없다.

산릉 곳곳에 주변 바다 조망처 자리해

섬산은 늘 멀리서 보면 볼품이 없다. 이곳 대청도 삼각산도 마찬가지로, 야트막하게 누워 보인다. 거문도 불탄봉~보로봉 능선도 그렇지 않던가. 하지만 산릉 너머 대양의 파도가 수없이 와 부딪치는 어딘가에 절경을 숨기고 있는 것이다.

삼각산은 정상 조망의 시원스러움을 극대화하기 위해 짙은 숲속으로 우선 일행을 이끈다. 수목은 거의가 구불구불한 줄기를 가진 소사나무다. 휘고 뻗어나간 각도와 모양새가 예측불허로 자유분방한 소사나무들이 빽빽이 들어선 숲 저편으로 푸른 바다가 자잘하게 미분되고 있다. 소사나무 줄기는 매끈하여, 그것이 이룬 공간 또한 말끔한 맛이 있다.


▲ 삼각산 주요 길목에 세워진 팻말. 내년에 억대의 예산을 더 투입해 등산로를 완벽히 정비할 것이라 한다.

이윽고 첫 번째 조망처에 이르러 양걸석씨는 걸음을 멈춘다. 오후 햇살이 역으로 비추며 삼각산릉은 바다 위에 거무스름한 윤곽선으로 엎드린다. 그 끝, 숫제 녹아서 함몰될 듯 강렬하게 햇살이 반사되는 해수면과 상어이빨 같은 예각의 모서리를 드러낸 능선 끄트머리가 겹쳤다. 양 대표가 이 트레일의 절정으로 삼은 서풍받이다.

“서풍이 워낙 심하게 몰아치는 곳이라서 그렇게 부른다고 해요. 바람이 세니까 파도도 거칠어서 해안 절벽이 깎아질렀다는 거지요.”

팔뚝만 하고 허여멀끔한 나무줄기들 사이로 길은 잘 다듬어져 있다. 양 대표가 삼서트레일을 구성하고 난 뒤 면사무소에 얘기하자 이렇게 정성들여 길을 정비했다고 한다. 길이 갈라지는 곳에는 서래동이며 선진동 방면 갈림길임을 알려주는 든든한 안내팻말도 세워두었다. 그 이외 리본 하나 뵈지 않는 것으로 보아 이곳을 다녀간 등산모임은 아직 거의 없는 듯하다.


▲ 대청도 정상 능선 최고의 조망처인 330m봉에서 바라본 오후의 서해 풍경. 능선 저 끄트머리가 서풍받이다.

통신용 철탑이 선 곳 바로 전에서 산릉 옆구리를 가로질러 곧 암릉길로 올라섰다. 밧줄이 설치돼 있지만, 눈이 쌓였을 때나 필요해 뵌다. 대청도 일원의 섬은 해양성 기후여서 겨울에 눈이 내려도 깊이 쌓이는 일은 별로 없다고 한다.

밋밋한 둔덕을 이룬 정상에 올라서자 저 앞에 넙적 엎드린 하마 모양으로 소청도가 떠오른다. 소청도는 대청도에 비해 면적이 2.9평방km로 5분의 1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등 뒤로 고개를 돌리면 거기엔 그 유명한 백령도가 큰 덩치로 일어선다. 백령도는 대청도보다 몇 배 큰 섬이다. “하지만 대청도 삼서트레일 같은 좋은 선은 찾아낼 수 없었다”고 양 대표는 말한다. 백령도는 트레킹보다 섬 주변의 기암 풍치로 한몫하는 곳이라 한다.

정상에서 잠깐 되내려와, 가느다란 노끈 같은 것으로 길 표식을 해둔 내리막길로 접어들었다. 엄청난 급경사여서 트레일이라는 말이 주는 가벼운 어감에 목이 짧은 신발을 신고 왔던 사람들이 좀 애를 먹는 눈치다. 여기 정상에서 서쪽 짧고 가파른 바위지대엔 계단을 설치하면 훌륭한 조망대 역할도 해서 좋을 것 같다. 저 아래로 등 굵은 갈색 짐승이 지금 막 울끈불끈 꿈틀거리듯 뻗어내린 능선을 보는 멋이 각별하다.


▲ 대청도의 명물 중 하나인 농여(농바위). 이 농바위를 지나는 농여트레일이 또한 개설돼 있다.

서풍이 워낙 심하게 와 부딪는 곳이라 서풍받이

오래지 않아 길이 오르막 때처럼 순해졌다. 해수면에 되비치는 오후 햇살은 짙은 숲이 일차 걸러주어도 눈을 제대로 뜨기 어려울 만큼 강렬하더니, 오래지 않아 불그스레 힘을 잃어갔다. 양 대장의 걸음이 빨라진다. 아까 정상 근처에서 경치가 좋다고 좀 노닥거린 탓에 시간이 너무 지나버린 모양이다. 파도소리가 시원하게 들리는 능선 위 벤치에 잠시 앉아 뻐근해진 종아리를 좀 쉬게 한 다음 내리닫아, 이윽고 팔각정자가 선 일주도로변에 내려섰다. 쉴 새도 없이 곧바로 잘록하니 가는 허리를 가진 대청도 남서쪽 끝머리를 향한다.

해넘이를 보기엔 이미 그른 것인가. 섬 꼬리 능선의 동사면은 이미 푸르딩딩한 기운이 스민다. ‘그래도’하는 기대로 걸음을 빨리한 덕택에 섬꼬리의 평평한 갯바위 마당바위가 아직 훤히 빛날 때 거기에 다다랐다. 완경사로 넓고 평평하게 섬 꼬리께를 에두르며 넓적한 띠처럼 펼쳐진 마당바위는 시퍼런 바닷물이 배경이어서 더 밝고 따듯하게 느껴졌다. 본바탕의 색이 다소 홍조를 띤 데다 붉은 노을 기운이 스미자 숫제 그곳 마당바위는 불그스레한 광채로 빛나는 것 같았다.


“이런 데선 한참 놀면서 쉬었다 가야 하는데!” 하고 누군가 항의하듯 외쳤지만, 양 대장은 못 들은 척 산봉 위로 발걸음을 뗀다. 서풍받이가 진짜라며-. 여기 마당바위는 내일 낮에 다시 오자고 달래면서 양 대장 뒤를 좇는다. 그는 어느새 봉우리 위에 올라가 앉았다. 막 태양이 수평선에 내려앉고 있다. 잿빛 이내의 층을 녹이며 사방으로 붉은 기운을 화염처럼 퍼뜨리고 있다. 그 막막한 풍경에 숨결도 이내 평온히 내려앉는다. 단조로움이 싫었는지, 바다는 삼각뿔 형상의 바위섬 하나를 돛배처럼 떠올려두고 있다.


▲ 대청도 남서쪽 꼬리께의 넓은 갯바위지대인 마당바위로 내려선 일행.

“자, 조금만 더 내려가자고요. 서풍받이 노을을 봐야지요. 낮 풍경하고는 또 다르거든요.”

그러면서 양 대장은 절벽 위 길을 내리뛰듯 앞장선다. 서녘을 향해 수사자마냥 갈기를 일으켜 세운 봉우리 옆을 가로지른 뒤 굵고 흰 밧줄이 매어진 목책 길의 끝까지 갔다. 후욱 하고 찬 바닷바람이 치민다. 아찔한 바위 절벽 위다. 멈칫 하며 일단 한 걸음 뒤로 물러선다. 깎아지른 절벽과 광대한 바다풍경이 어울리며 펼쳐지는 그곳이 서풍받이. 왼쪽은 거대한 병풍이고, 오른쪽은 하늘에 쐐기 박듯 치솟은 피라미드 형상이다. 그 해안절벽지대 가운데로 마치 장대(將臺)처럼 불룩 튀어나온 기막힌 조망대에 우리는 올라선 것이다.

“비록 어둠 속에서 헤맬망정 여기를 그냥 떠날 수는 없다”며 그예 두 여성은 서편을 향하고 주저앉는다. 어쩔 것인가. 실은, 만약 밤에도 그리 춥지 않은 한여름이었다면 우리는 여기서 그냥 밤을 보내고 말자며 식량 지원조만 내려 보냈을 것이다.

황혼 빛이 제법 오래도록 이어졌다. 해수면을 따라 번져온 어둠이 이윽고 산릉까지 검게 적셨다. 우리는 랜턴을 켜들었지만, 곧 저 앞으로 우리를 마중나온 엘림민박 버스의 불빛이 보였다.


▲ 서풍받이로 가는 길. 서쪽 멀리로 뻗은 능선 꼬리가 오후 햇살을 받아 물들었다.

대청도

대청도는 면적 15.7평방킬로미터, 남북 5km, 동서 약 3km, 해안선 길이 12.76km인 섬으로 약 1,500명 주민이 거주하고 있다. 크기에 비해 가운데 솟은 산 삼각산은 343m로 높은 편이다. 크고 푸르다는 뜻의 대청(大靑)이란 이름은 멀리서 볼 때 이 산릉을 뒤덮은 푸른 수목들에서 기인한 바 컸을 것이다. 수령 150년 이상의 노송 200여 그루가 울창하게 노송지역을 형성하고 있다. 동백나무 최북단 자생지로 이곳의 동백나무숲은 천연기념물 제66호로 지정돼 있다. 섬 주변은 대개 기암절벽이 둘러싸고 있으며, 그 사이사이에 크고 작은 깨끗한 모래사장이 형성되어 있다.


대청도에선 신라유물인 금동여래입상이 출토된 것으로 보아 신라 때 이미 많은 사람이 거주했던 것으로 추측된다. 고려 때 중국 원(元)나라 순제(順帝)가 유배되어와 살았다고 하며, 지명으로 대궐터라는 곳이 있다. 고려조 제27대 충숙왕 때 원순제가 유배돼 왔다는 기록이 몇몇 문헌에 전한다.


▲ 마당바위에 누워 해바라기를 하는 취재팀. 마당바위는 오래도록 머물고 싶어지는 자리다.

일제 때 대청도에는 울산, 장선, 신포, 대흑산도, 거제 등과 더불어 동양포경주식회사의 사업장이 들어섰다. 1930년대 기록을 보면, 매년 30~50마리, 많게는 100마리가 넘는 참고래를 포획했다고 한다. 우리나라 3대 어장인 연평도 인근이어서 조기잡이가 성황을 이루기도 했다.

대청도의 명소

농여트레일 대청도 북쪽 해안의 명물로서 농처럼 생겼고 구멍이 뻥 뚫린 형상이 기이한 농바위를 지나는, 길이 1.2km 30분짜리 트레일이다. 곱디고운 모래사장이 거의 평지처럼 넓고 길게 펼쳐졌고, 해안가 쪽으로는 농바위를 비롯한 기암들이 여기저기 섰는데 그 풍경이 말끔하고도 이색적이어서 휘적휘적 걷는 동안 기분이 절로 좋아졌다. 이 해안의 특징 중 하나는 썰물로 물이 빠져도 해안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얕고 길쭉하게 작은 호수가 생긴다는 점이다. 이 호수는 아이들이 물장구치며 놀기에 딱 좋다고 한다. 앞으로 알려지면 많은 사람이 찾을 것이다.


▲ 마당바위 아래에서 위를 바라보았다. 수십 명이 머물러도 좋을 곳이다.

모래언덕 내동에서 옥죽포로 내려가는 지역엔 사막을 연상시킬 만큼 넓은 모래둔덕이 형성돼 있다. 파도에 밀려와 쌓인 모래가 겨울철로 계절풍에 날려 쌓이며 이루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답동의 학교가 이 모래로 매몰될 지경이 되어 내동으로 옮겼다고 할 정도다. 25여 년 전에는 이 모래가 하천 하류를 막으며 수해까지 입어, 바람이 몰아쳐 오르는 곳에 방풍송림을 조성, 사구의 확장을 막았다. 이것이 지금은 관광자원이 될 수 있다고 하여 송림을 베어내자는 의견도 나왔으나, 다만 송림뿐 아니라 방파제, 건물 등 바람의 흐름을 방해하는 여러 요인들이 생겨나 복원이 쉽지 않다는 학자들의 추정이다.

몽돌해안 대청도 몽돌해안은 거제 학동이나 보길도 해변과 달리 밝은 갈색 몽돌이 대다수다. 그래서 밝은 날 흰 파도마저 이는 날엔 유달리 눈부시다. 이 몽돌해변길을 답동해변산책로라 부르며, 그 끝에서부터는 해안가 바위지대 위로 데크를 설치해 조성한 검은낭산책로가 이어진다. 이 두 산책로를 이어서 1시간반쯤 걸어보는 것도 좋다.


▲ 서풍받이의 피라미드처럼 뾰족한 암봉에 물든 석양빛을 바라보고 있는 취재팀.

삼서트레일&대청도 여행 길잡이

대청도만은 1박2일, 백령도까지 엮으면 2박3일

삼각산과 서풍받이 일주길을 이은 삼서 트레일은 총 7km에 4~5시간 잡으면 된다. 빨리 걷자고만 들면 2~3시간 만에도 될 테지만, 그럴 것 같으면 이 트레일을 찾을 이유가 없다. 조망 좋은 곳들마다 놀며 쉬며 걷는 것이 이 삼서 트레일의 포인트다. 일행 중 노약자가 있다면 서풍받이 쪽만 한 바퀴 돌게 하면 된다. 삼각산 정상에서 서풍받이 쪽 내리막길은 몹시 가팔라서 노약자에겐 아직 좀 무리다. 내년 봄쯤엔 계단을 놓을 것이라 하니, 그때까지 기다릴 일이다.


삼서 트레일의 3대 조망처라면 삼각산 정상 전의 330m봉, 섬 남서쪽 꼬리의 갯바위지대인 마당바위, 그리고 서풍받이다. 이 중 절정인 서풍받이는 한낮보다 노을 무렵의 풍치가 한결 좋았다. 한편, 섬 꼬리의 마당바위는 오후 한나절이 저녁때보다 더 좋았다. 그러므로 오후에 산행을 시작, 노을 무렵에 서풍받이에 도착하게끔 시간 계획을 잡는 것이 좋다. 마침 하모니플라워호의 대청도 도착 시간이 점심때이므로 오후 한나절 산행을 하면 각 명소마다 딱 알맞은 시간에 다다르게 된다.


▲ (위)대청도 선착장 바다식당의 성게비빔밥. / 깨끗한 민박인 엘림민박. 전용 버스도 3대 갖추었다.

대청도 삼서트레일과 농여해변 트레일, 기름항아리바위 조망대 구경 등, 대청도만 보려면 1박2일, 여기에 백령도 해안풍경 관광까지 겸한다면 2박3일 일정이 딱 알맞다. 하모니플라워호 등 여러 여객선이 인천항~소청도~대청도~백령도 구간을 매일 왕복하므로 언제든 날짜만 잡으면 되겠다. 다만 토~일요일 배편은 종종 만원 사례이므로 미리 예약해야 한다.

현재 산악투어(02-730-0022)가 최고 속도인 하모니플라워호와 특약을 맺고 대청도 삼서 트레일 1박2일이나 대청도·백령도 2박3일 여행 상품을 본격 취급하고 있다. 대청도 1박2일의 경우 평일 12만9,000원, 주말(금~토, 토~일) 13만9,000원, 대청·백령도 2박3일의 경우 평일 17만9,000원, 주말(금~일) 18만9,000원. 고객이 10인 이상이면 대청도 현지에서 삼서트레일 길 안내까지 해준다고 한다.


▲ 서풍받이 능선의 가마득한 절벽 위에 오른 취재팀

교통 인천여객선터미널에서 여객선 세 척이 하루 1회씩 운항한다.

하모니플라워호 3시간25분 소요, 왕복요금 12만4,900원(제이에이치페리 전화 1644-4410)

데모크라시5호 3시간40분 소요, 왕복요금 11만7,300원(청해진해운 032-884-8700)

프린세스호 4시간30분 소요, 왕복요금 11만7,300원(우리고속훼리 032-887-2891~3).

대청도 내에서는 선진동여객선 선착장 입구를 지나는 대청공용버스가 하루 4회 운행하고 있으나 여객선 도착 시각이 종종 달라지므로 이를 이용해 섬을 구경하기는 어렵고, 예약한 숙박업소의 도움을 받거나 섬 내에 2대 있는 개인택시(032-836-0064, 1359)를 이용해야 한다. 섬으로 차를 가져갈 수도 있으나 편도 운임이 20만 원이 넘는다.



버스운행 시각

1회: 동내동(07:15) -> 사탄동(07:25) -> 고주동(07:31) ->선진동(07:35, 선착장입구) -> 학교(07:42) -> 옥죽동(07:50) -> 학교(08:00) ->동내동(08:05)
2회:동내동(09:50) -> 서내동(09:53) -> 양지동(09:55) ->옥죽동(10:00)-> 선진동(10:10 선착장 입구. 10시50분까지 대기) -> 사탄동(11:15) -> 고주동(11:25) ->동내동(11:40)

3회:동내동(17:00) -> 학교(17:25) -> 동내동(17:10) -> 옥죽동(17:15) -> 선진동(17:25) -> 고주동(17:30) -> 사탄동(17:40) -> 동내동(07:50)
4회:동내동(21:30) -> 학교(21:35) -> 동내동(21:40) -> 옥죽동(21:45) -> 선진동(21:55,선착장 입구) -> 고주동(22:00) -> 사탄동(22:10) -> 동내동(22:20)


숙식(지역번호 032) 군인들이 많이 주둔하고 있어 선착장 근처와 섬 마을 곳곳에 민박집, 여인숙 등이 여럿 있다. 그중 대청리 엘림민박(836-5997), 솔향기펜션(836-2477) 등, 최근 신축해 깨끗한 샤워장과 화장실을 갖춘 업소를 찾아 이용한다


/ 조선일보 월간산 / 글·안중국 기자, 사진·안중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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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백령도 대청도 여행신문 백령도 대청도를 걷다. 2012.09.24 산악투어 양걸석 대표 개발
백령도 ·대청도를 걷다
-산악투어 트레킹 상품 판매 중
-하모니플라워 타고 빠르고 쉽게

항아리처럼 생긴 나루, 인천광역시 옹진군은 아름다운 섬 백령도와 대청도를 품고 있다. 두문진 트레킹, 서풍받이 트레킹 등 풍경이 뛰어난 트레킹 코스가 오밀조밀 형성돼 있음에도 그동안 명성을 얻지 못한 게 사실이다. 최근 산악투어는 백령도와 대청도를 직접 답사한 뒤, 하모니플라워를 이용한 신상품을 출시했다.


트레킹 전문 랜드사인 만큼 산악투어는 섬에 형성된 트레킹 코스에 주목했다. 상품의 포인트는 ‘서해의 해금강’이라 불리는 두문진 관광이다. 두문진 유람선을 타고 바다에서 두문진을 느끼고, 기암괴석을 볼 수 있는 해안 절벽을 걸으며 육지에서 또 다시 두문진을 즐길 수 있다. 백령도에서 30분 정도 배를 타고 들어가는 대청도는 백령도에 비해 생소한 편이지만 의외로 관광자원이 풍부하다. 서풍받이 트레킹, 검은낭 해안 트레킹 등의 코스를 걸을 수 있고 심청각, 용트림 바위, 중앙동 교회 등 사연이 담긴 여행지도 돌아볼 수 있다. 산악투어 양걸석 대표는 “과거 인천에서 백령도까지 약 5시간 가량 걸렸으나 쾌속선인 하모니클라워를 타면 인천에서 백령도까지 3시간 40분만에 도착해 편리하다”며 “여행사에도 커미션을 제공하므로 인센티브 여행객을 대상으로 판매하기 좋을 것”이라고 밝혔다.


상품은 크게 백령도만 둘러보는 1박2일짜리와 백령도·대청도를 동시에 관광하는 2박3일짜리로 나뉜다. 1박2일 상품은 11만5,000원부터 2박3일 상품은 17만5,000원부터다. 한편, 2,071톤 규모의 하모니플라워는 매일 운항하며 총 564명을 태운다. www. sanaktour.com 02-730-0022


/ 여행신문 / 글·구명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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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태항산 여행신문 떠오르는 중국 태항산 2012,06,25 산악투어 양걸석 소장 개발
[커버스토리] 떠오르는 중국 신상, 태항산-중국 10년째 장자지에(장가계) 타령 거대한 태항산맥 히든카드 될까

그동안 신상품에 목 말랐던 중국 상품 담당자가 중국 태항산(太行山)에 주목하고 있다. 한국의 백두대간과 맞먹을 크기의 태항산을 놓고, 여러 업체가 눈독을 들이는 상황이다. 현지는 현지대로, 한국의 여행사는 여행사대로 태항산을 상품화하고자 분주하다. 그러나 손님의 인지도가 아직까지 낮은 등 태항산 상품을 키우기 위해서는 해결해야 할 과제도 많다. 태항산의 과거와 현재를 진단하고 미래를 점쳐 보았다.


-개발 후 사스 뭇매 … 최근 입소문 타
-너도나도 뛰어드는 형국, 우려 목소리도

■2008년 첫 단추…전년 대비 150% ↑


최근 태항산(太行山, 타이항산)이 업계에서 주목받고 있다. 중국 현지에서는 태항산을 방문하는 한국인이 전년 대비 150% 이상 증가한 것으로 추정할 정도다. 특히 태항산 관광의 대표적인 풍경구인 린저우(임주)의 태항산 대협곡 인근에서는 4월 말부터 한국인 관광객을 위한 전동차가 환산선에서 왕상암까지 운영되는 등 관광 인프라 구축이 한창이다.

태항산 개발이 본격화된 시기는 2008년 경이다. 상품 개발 후 사스 등 중국여행의 악재가 연이어 터지며 상품이 활성화되지 못했으나 지난해 말과 올해 초를 거치며 입소문을 타기 시작했다. 태항산의 10여 개가 넘는 코스를 직접 답사해온 산악투어 양걸석 소장은 “처음 태항산을 개발하고자 했을 때만 해도 중국 현지며 한국의 관계자도 의아해했을 정도였으나 지금은 인지도가 많이 올라간 상태”라며 “항일운동의 한 줄기인 조선의용군의 뿌리가 된 곳으로 역사적으로도 의의가 있으며 25억 년에 걸쳐 지형이 형성되다 보니 협곡이나 기암 자체가 장관이다”고 설명했다.



■태항산 개발 불붙인 선박 및 항공


태항산 붐을 낳은 주요인으로 공급 편의 증가를 빼놓을 수 없다. 태항산으로 가는 관문으로는 산둥성의 지난(제남), 칭다오(청도)를 비롯해 정저우(정주), 베이징, 상하이, 스자좡(석가장), 타이위엔(태원) 정도다. 특히 산둥성은 이동수단의 공급이 많아 태항산 상품 개발의 촉매제가 되고 있다. 위동훼리가 칭다오(청도)와 웨이하이(위해) 구간을 정기적으로 운항하고 있어 선박으로 태항산 상품을 판매할 수 있을뿐더러 올해 주요 항공사가 칭다오 노선을 놓고 증편과 신규 취항을 반복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그동안 정저우(정주)는 대한항공이 단독 취항했던 터라, 여행사가 좌석을 확보하기 어려웠으나 5월 말부터 정저우로 남방항공이 직항 전세기를 띄워 태항산 개발 붐에 한몫했다. 허베이성의 성도인 스자좡(석가장) 전세기 역시 태항산 상품으로 꾸려진 상태다.


■장님이 코끼리 만지는 식은 안돼


그러나 태항산맥은 워낙 크다 보니, ‘주마간산’격으로 판매되는 오류를 범하기도 쉽다. 모 중국랜드사 관계자는 “태항산은 큰 코끼리와 같은데, 일부 업체가 태항산을 상업적으로만 접근해 장님이 코끼리를 만지는 격으로 판매해 손님에게 실망감을 안겨 줄 우려도 있다”며 “입장료가 안 드는 태항산의 변두리만 둘러보게 한 다음 쇼핑만 하게 하는 상품도 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패키지여행사도 하나둘씩 태항산을 선점하고자 움직이는 중이다. 패키지 여행사와 거래 중인 중국 현지 랜드사도 풍경구 선점에 열을 올리고, 모 여행사에서는 태항산에서 가까운 허베이성의 한단으로 전세기를 타진하기도 했다. 그러나 일부에서는 마음만 앞서선 안 된다고 제동을 건다. 모 패키지 여행사의 중국팀장은 “잘 된다는 얘기가 돌며 여러 업체가 덤비기 시작한 것은 맞지만 정작 여행사에서는 어떤 콘셉트로 접근해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하는 것 같다”며 “장사가 안 되는 몇몇 지역의 항공 좌석을 소진하기 위해 단편적으로 태항산을 판매하는 경향도 두드러지나, 장기적으로 중국의 효자 상품으로 키우려면 패키지 여행사에서도 고민을 더 해야한다”고 말했다.


★태항산맥(타이항산맥太行山脈) 많은 사람이 태항산을 ‘산’으로 부르고 있지만 사실 태항산은 만선산, 구련산, 왕망령, 팔리구 등을 아우르는 거대한 산맥이다. 산시성(산서성), 허난성(하남성), 허베이성(하북성) 등 여러 성에 걸쳐져 있는 태항산맥의 길이는 남북으로 600km에 달한다.

/ 여행신문 / 글·구명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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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전구 만리장성 월간산 2000년의 고요와 더불어 옛 만리장성을 걷다 2012.5월호 산악투어 양걸석 대장 개발 및 가이드
[해외 트레킹 | 중국 전구장성] 2,000년의 고요와 더불어 옛 만리장성을 걷다
한껏 당긴 활 모양 능선의 절경&옛 모습 그대로의 산성벽 길
▲ 만리를 끊임없이 이어간 만리장성중에서 ‘최고의 경관을 보이는 구간’으로 꼽히는 전구장성. 중앙부 저 뒤의 높은 산봉에 성루가 뵌다.

자전거 행렬이 물결처럼 흐르던 그때가 언제였던가. 중국 베이징(北京)은 엄청나게 변해 있었다. 도도한 강물 같던 자전거 행렬은 간 곳 없고, 그 자리를 크고 작은 차량들이 꽉 채우고 있었다. 서로 빨리 가려고 머리를 들이미는 통에 차량 무리는 자연스레 흐르지 못하고 꼼짝없이 정체되기 일쑤였다. 자금성을 중심 삼아 나이테 모양으로 개설했다는 순환도로가 사뭇 여섯 가닥이나 됨에도 출근시간대의 베이징 시내 도로는 정체를 반복했다. 3일의 청명 연휴를 맞아 외곽으로 빠져나가는 행락객들이 크게 늘어난 탓도 있다고 길 안내자로 나선 서명 이사는 말했다.


우리는 베이징 북방의 전구장성을 찾아 나선 길이다. 그간의 만리장성 구경은 팔달령이나 산해관을 보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곳은 말끔히 다듬어지고 복원되어 옛 장성의 정취를 맛보기 어렵다. 정제된 관광지의 분위기에 식상한 고적 마니아들이 만리장성의 여러 다른 곳을 찾기 시작했고, 그중 유난히 각광받기 시작한 곳이 전구만리장성이다. 중국 방방곡곡의 명산루트 개발에 정열을 쏟아온 산악투어의 양걸석 사장은 “등잔 밑이 어두웠다”며 이곳 전구장성 길을 소개했다.


중국의 만리장성은 동쪽 랴오닝성(요녕성) 산해관에서 서쪽 간쑤성(감숙성)의 가욕관까지 약 5,000km에 걸쳐 있다. 우리나라의 전통적인 거리 단위인 리는 0.4km이지만 중국의 리, 즉 화리(華里) 1리는 0.5km이니 곧 만 리가 된다는 것이다. 산해관~가욕관 간의 도상 거리는 2,700㎞이며, 그 사이의 갈래 성들까지 모두 합쳤을 때의 길이가 5,000km라고 한다. 그러나 조사 방법이나 범위 등 학설이나 학자에 따라 6,000km에서 8,000km까지도 장성의 길이는 여러 가지로 달라진다.


▲ 산릉을 따라 이어지는 전구장성. 570여 년 전 명나라 때 대대적으로 재축조한 것이 오늘날까지 전해지고 있다.

이 만리장성은 기원전 214년 진시황이 북의 흉노를 몰아내고 동서로 길게 쌓은 것이 시초라 한다. 이미 2,000년도 더 된 옛적의 일이니 그때의 것이 지금껏 남아 있기 어렵다. 현존하는 장성의 대부분은 570년쯤 전인 명나라 때 대대적으로 재축성한 것이라 한다. 이 만리장성은 구간에 따라 산해관(山海), 가욕관(嘉), 팔달령(八), 모전욕장성(慕田城), 금산령장성(金山城), 사마대장성(司台城) 등 여러 가지로 불린다. 이 중 전구장성에 대해 베이징 시관광국은 이렇게 서술하고 있다.


‘젠커우창청(箭城,jian kou chang chang,전구장성) : 화이러우현(柔, 회유현)의 보하이진(渤海, 발해진) 내 전주촨촌(珍珠泉村, 진주천촌) 서북부에 위치해 있는 젠커우장성은 명나라 시대 만리장성의 험준한 구간으로 가장 유명하며, 각종 장성 화첩상에서 최고의 경관을 보이는 구간으로서 장성 촬영의 최고 인기 관광지로 각광받고 있다. 장성 대부분이 험준한 봉우리들 상에 축조돼 웅장한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으며, 장성을 거닐다보면 기복의 변화가 심한 것을 느낄 수 있다.’


윤곽선이 당긴 활 모양이라는 데서 명칭 유래 
전구(箭)라는 말에서 전은 곧 ‘활’이며 구는 ‘당긴다’는 뜻이니, 곧 전구장성이란 활을 당긴 모양새와 흡사하다는 데서 붙인 명칭이다. 장성의 북쪽 어느 마을길에서 내려 비포장 농로를 10여 분 가다가 양걸석 사장은 저 앞의 산릉을 가리켰다. 별다른 설명을 들을 필요도 없이 바로 저기가 전구장성임을 알 수 있었다. 팽팽히 활시위를 당긴 형상의 암갈색 산릉이 앞에 펼쳐졌다.


▲ 1 나무 사다리를 타고 전구장성벽 위로 오르는 일행. 현지주민이 사다리를 걸쳐놓고 통과세를 받고 있다. 2 잡목이 자라고 무너진 성벽돌이 깔린 옛 성벽 위를 따라 걷는 사람들.

아마도 여기가 우리네 산골 어디쯤이었다면 수리가 날개를 활짝 편 형상이라 해서 수리봉이라거나 학봉 같은 이름을 얻었기 십상이다. 그러나 여기는 전쟁이 벌어졌던 산성이다. 새의 날개보다는 활 같은 병기를 연상하는 것이 더 자연스러웠을 것이다.


활의 가운데 부분에 해당하는, 산릉에서 가장 야트막한 곳을 향해 우리뿐만 아니라 중국인 관광객들도 줄지어 올랐다. 휴일 전구장성을 찾는 현지인들의 수도 만만찮았다. 중국인들과 우리 한국인들, 그리고 간간이 유럽인들도 뒤섞이어 전구장성의 깔딱고개를 향해 올랐다.


오르막에 다다라 갈지자로 몇 번 꺾지 않아 산성벽 아래에 다다랐다. 이렇듯 접근이 쉬우니 옛적 전쟁이 벌어졌을 때엔 이 부분이 가장 집중적인 공격을 받았을 것이다.


안부에서부터 양쪽으로 급격히 치달아 오른 성벽 위로 일단 올라야 하는데, 가장 야트막한 곳에 현지 주민인 듯한 사람이 든든히 나무 사다리를 걸쳐놓고 이용료를 받고 있다. 1인당 3위안은 너무 비싸다며 서 이사가 흥정을 붙여보지만 그는 막무가내다. 이 사다리를 걸쳐둔 곳 이외엔 성벽이 너무 높아 아무도 올라갈 수 없다는 것을 너무도 잘 알고 있는 것이다.


나무 사다리를 타고 성벽 위에 섰다. 양쪽으로 하얗게 뼈를 드러낸 듯, 대장성이 6~7m 폭의 기나긴 띠로 산릉을 이어가고 있다. 능선이 정점을 이룬 산봉마다엔 크고 작은 성루가 섰다. 필시 주위를 감시하던 망루이거나 아니면 병졸을 지휘하던 장대(將臺)로 역할하던 곳이었을 것이다. 벽의 높이는 우리가 올라온 북쪽이 남쪽보다 한결 높았다. 서 이사가 말했다.


“성벽에서 대개 높은 쪽이 바깥쪽이라고 보면 됩니다. 애초 만리장성은 북쪽 흉노의 침입을 막기 위한 것이었으니까요.”


그의 말을 듣고 좌우를 살피니 북쪽으로는 성벽에 붙어 오르는 적을 향해 화살을 쏘거나 창을 던지기 위해 돌출해 쌓은 치성(雉城)도 몇 보였다. 그러나, 장성은 동쪽과 서쪽 산릉 위로 끝 없이 하얀 선을 이어가고 있었다. 저 기나긴 만 리의 장성을 물 샐 틈 없이 방어한다는 것이 가능했을까. 어디 한 군데가 뚫리면 순식간에 적은 등 뒤에서부터도 달려들었을 것이다. 그러자, 서 이사가 또한 설명한다.


▲ 1 전구장성 성루 내부. 홍예벽돌로 하나하나 정성들여 쌓았을 건축물이건만 거의 방치된 채다. 2 전구장성벽 안의 계단길. 폭이 5~8미터 되는 성체 위에 여장을 양쪽으로 각각 한 줄씩 쌓았다.

“그렇지요. 그래서 어떤 학자는 만리장성은 오로지 방어벽이었다기보다는 경계선의 의미를 가진 울타리, 즉 영역 표시의 의미도 컸다고 봅니다.”


이 성벽이 이어간 산 능선 안쪽은 우리 영토이니 더 이상 넘어오지 말라는 선언적 의미도 컸을 것이란 해석이다. 가장 대표적인 장성 관광지인 산해관의 경우 북쪽을 관외, 베이징이 있는 남쪽을 관내라 불렀던 것도 실질적인 영역을 그렇게 그었기 때문이라는 말이다. 실로 만리장성은 중원과 변방을 가르는 경계선이자 관내의 농경문화, 관외 곧 변방의 유목문화 지역을 가르는 문화적 경계선의 역할도 했다.


베이징의 봄은 위도가 서울보다 사뭇 더 높음에도 불구하고 서울보다 빠른 것 같다. 서울은 쌀쌀했는데 여기는 해발 600m가 넘는데도 후끈한 열기가 느껴진다.


“베이징은 서쪽 태항산맥과 동쪽 연산산맥이 만나 이룬 깔때기 같은 지형 아래쪽에 자리 잡았어요. 남사면의 우묵한 곳이어서 여름엔 섭씨 40도까지 올라간답니다.”


570년 세월에도 옛 모습 거의 그대로
우리는 재킷을 벗어 배낭에 넣고 양 사장이 인도하는 대로 서쪽으로 성벽을 걸었다. 군데군데 허물어져가고 있기는 했지만 근대이후 한 번도 유지보수를 하지 않았다는 성벽치고는 놀라울 만큼 상태가 멀쩡했다. 성벽은 크게 두 가지 재료를 썼다. 자연석을 큼직하게 다듬은 것은 성벽의 하부, 즉 성체(城體)에 주로 썼고 벽돌처럼 구운 것으로는 여장(女墻·성가퀴·성벽 상부의 야트막한 담장)을 두 줄로 쌓는 데 썼다. 하얀 회 같은 것을 모르타르 삼아 성벽을 쌓았는데, 횟가루와 찹쌀가루를 섞어서 만들었다고 한다. 그것은 점착도가 시멘트 모르타르 못지않아, 500년 넘는 세월이 지난 뒤임에도 성벽은 굳건했다. 


▲ 1 허물어진 산성벽 위를 걷는 트레커들. 2 조망 좋은 성루 위에 올라 환호하고 있는 트레커들. 3 허물어져가고 있는 전구장성의 성루.

이 기나긴 장성을 쌓고 또 그것을 유지보수하는 데도 엄청난 인력이 필요했을 것이다. 이를 위해 명나라는 징집한 이들이 아예 산성 아래에 마을을 이루고 살도록 했다. 만리장성 양쪽 골짜기 곳곳에 지금껏 집성촌들이 여럿 형성돼 있는 이유다.


전체적으로 보아 산세가 가파르고 험하기는 외려 베이징 쪽, 그러니까 남쪽이 더했다. 하긴, 산이 오로지 북쪽만 험할 리는 없는 것이다.


산성벽이 없다 해도 이곳 전구장성 일대는 빼어난 산세만으로도 한몫 했을 것이다. 그리고, 옛 사람들이 산성을 쌓아두지 않았다면 이곳 전구장성 일대의 산릉을 탐승하는 것 자체부터가 적잖은 모험이었을 것이다. 산릉은 곳곳이 그만큼 가팔랐고, 그 산릉을 따라 쌓은 산성벽의 어떤 구간은 그야말로 코가 닿을 것처럼 급경사다.


몸을 숨기고 밖으로 활을 쏠 수 있게끔 요철을 준 성벽은 오랜 세월과 더불어 군데군데 허물어지기도 하며 이윽고 정형에서 벗어나 자연과 닮은 자연스런 굴곡을 보인다. 걷다가 성가퀴에 기대어 쉬는 사람들의 실루엣이 보태어지며 봄날의 전구장성은 절박했던 전장의 기운을 완벽히 거두어낸다. 그것은 이제 전쟁과 갈등의 유물이 아니라 자연과 조화를 이룬 조형물로 존재할 뿐이다.


홍예문의 형식으로 통로를 연결한 성루 속을 지난다. 천장이나 벽체가 일부 허물어져 바닥에 여러 모양의 성돌이 어지러이 널려 있다. 부서진 것도 있지만, 대부분은 500여 년 전 그때 얼마나 야무지게 구웠던지 여전히 멀쩡하여 다시 집을 짓는 데에 써도 되겠다 싶다.


▲ 전제(天梯), 곧 하늘다리라 이름한 구간을 오르는 취재팀. 종종 사고가 나는 곳이므로 주의해야 한다.

성루를 빠져 나오자 문득 고요가 감돈다. 일행은 저만치 앞서간 뒤이고, 주변에는 아무도 없다. 고요 속에 잠기자 옛 장성이 무어라 말을 걸어온다. 그 뜻은 쉽사리 알길 없다. 저 유럽인 부부는 무슨 속삭임엔가 이끌렸던 것일까. 남들은 그냥 지나쳐 갔던 성루 뒤의 높은 망루에 올라 미동도 없이 먼 산릉을 바라보고 있다. 수많은 이들의 피와 땀이 어렸을 이 기나긴 장성의 570년 세월에서 실제로 전투가 벌어졌던 시기는 그리 길지 않았다고 한다.


연한 갈색의 수목 무리 가운데를 따라 늘어선 암갈색이거나 연회색인 산성벽은 자연스레 자연의 일부처럼 어울렸다. 이제 신록이 돋으면 장성의 선은 돋을새김으로 선명히 드러날 것이다.


급경사 하늘사다리에서는 극도로 조심해야
가파른 내리막을 성벽의 덮개를 잡으며 조심스레 내려간다. 허물어진 계단 밑의 단층을 보니 잡석과 진흙이 번갈아 한 겹씩 깔렸다. 계단의 아래까지 이렇게 정성들여 쌓았기에 장구한 세월을 견딜 수 있었을 것이다. 성벽 왼쪽, 그러니까 베이징 쪽으로 널찍한 공터를 이룬 숲지대에서 가져온 도시락을 푼다. 양 사장은 여름에도 시원한 그늘이 지는 곳으로 시간상이나 거리상으로 딱 점심자리로 안성맞춤이라며 자랑스러워한다. 그는 손님들을 제대로 모시기 위해 숱하게 이곳을 답사했던 것이다.


▲ 하산지점인 서책자마을에서 만난 중국인 촌로.

성벽을 가로질러 또한 높직하게 벽을 쌓아둔 곳도 있다. 아마도 이 위쪽은 만약의 경우 최후의 저항을 위해 만든 보루였을 것이다. 낮게 허물어진 곳 사이로 올라서는 데도 성돌을 예닐곱 개 겹쳐 쌓아둔 위태로운 발디딤을 디뎌야 한다. 여자들은 손을 잡아주어서도 어렵게 힘들게 올랐다.


이윽고 코가 닿을 듯 가파르다는 그 계단길 구간에 다다랐다. 천제(天梯), 곧 하늘사다리라 부르는 곳이다. 가파른 경사에 축성하다 보니 단의 높이에 비해 폭은 발 하나도 제대로 올려놓기 어려울 만큼 좁다. 베이징을 출발하며 서 이사가 “어떤 데는 70~80도는 된다”고 했을 때 내심 피식 비웃었는데, 사실이었다. 우회로를 따르지 않고 그 가파른 구간에 직접 붙었던 이들은 여지없이 두 손을 동원하고도 공포스런 등행을 해야 했다.


아닌 게 아니라 여기서는 사고도 적잖이 나고 있다. 베이징 적십자사의 ‘2010 중국 아웃도어 사고 보고’에 의하면 2010년 한 해 동안 베이징에서 안전사고가 가장 많이 발생한 곳이 바로 이곳 전구장성이다. ‘베이징 주변지역 전체 사고 26건 중 6건을 차지, 가장 조심해야 할 곳으로 드러났다’고 밝히고 있다.


급경사 계단 구간을 지난 뒤 또 하나의 허물어져 가는 커다란 진지를 지난 뒤 이제 옛 산성도 지겹다 싶어진다. 비가 올 때 비닐만 씌우면 곧 대피처가 될 수 있게끔 팔뚝 굵기의 통나무로 뼈대를 엮어둔 쉼터에 곧 다다랐다. 이즈음에서 양걸석 사장은 하산을 선언한다. 그는 사람들이 어느 정도에서 그만 물리는지를 잘 알고 있는 것이다. 저 위 성루를 지나고 산봉을 넘어 삼각파도 형상으로 솟구친 무수한 산봉들의 어느 선인가를 따라 장성은 끊임없이 달리고 있다. 이곳을 지나 좀더 가면 응비도앙(鷹飛倒仰), 곧 매가 날아오르다가 부딪쳐 떨어졌다는 높디높은 망루도 있는 등, 길이 더 험해진다. 


▲ 허물어진 성벽 밑을 지나고 있는 사람들. 급경사 구간에 쌓인 성벽은 상대적으로 빨리 훼손되었다.

쉼터에서는 강한 억양의 독일어를 쓰는 유럽인 예닐곱 명이 앉아 쉬고 있다. 옆의 장사치는 우리가 다다르자 스티로폼 박스를 열어 마실 것들을 내보인다. 한눈에 산행에 중독된 것이 분명해 뵈는 무술인처럼 탄탄한 중국인 두 사람이 우리 일행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곧 길을 잇는다. 그들은 순식간에 가파른 계단을 올라 성루 뒤로 사라졌다. 저런 장성 타기 마니아들이 적지 않다고 서 이사는 말한다.


잡담을 나누며 하산길에 접어든 지 30분이 채 지나지 않아 산골 마을이 나선다. 출발점에서 머지않은 곳인, 서책자촌(西柵子村)이라는 마을이다. 모택동모자를 쓴 순하디 순하게 생긴 마을 노인이 뵈자 너도나도 그와 더불어 기념사진을 찍는다. 오래지 않아 중국에서도 이런 순박한 표정의 사람을 만나기는 어려워질지 모른다. 마을 한쪽에서는 관광객을 맞을 숙소를 짓노라 포크레인이 부지런히 움직이고 있다.


트레킹 길잡이
안내판, 표지 없어 가이드 필요
전구장성은 베이징에서 직선거리로 약 70km 북쪽에 위치한다. 차량으로는 산행 시작지점까지 약 2시간 걸린다.


트레킹은 장성의 구간을 끊기 나름이지만 4~5시간 정도 걷고 끝내는 것이 적당하다. 성벽 위엔 그늘이 거의 없으므로 차양 모자, 긴팔 상의 등이 필수다. 식수도 잘 챙겨간다. 봄가을로 건조 상태에 따라 산행을 통제하기도 하고, 안내판이나 표지가 전무하므로 경험자가 동행하는 것이 좋다. 산악투어(02-730-7227) 등, 중국 명산 전문 여행사의 상품을 이용하는 것이 무난하다.


날짜가 넉넉하고 여러 명이 어울려 갈 때는 진천페리로 톈진 경유 베이징까지 가서 트레킹을 마친 뒤 귀로에 베이징→인천 항공편을 이용하면 한결 낭만적인 여정이 될 것이다.


▲ 진천페리 5인실
진천페리 1991년 한·중 합작으로 설립된 카훼리 운항선사로서, 주 2회 인천~톈진을 왕복한다. 이 항로에 운항되는 천인호는 길이 186m, 총톤수 2만6,463톤으로 여객정원 800명인 카페리선이다. 선내에 면세점을 비롯해 여러 편의시설이 있다. 인천~톈진 간 25시간 정도 운항하므로 책이나 음악 등으로 여유로이 시간을 보낼 준비를 하는 것이 좋다. 5인 가족의 경우 디럭스 5인실 같은 것을 예매하는 등, 일행 수에 따라 독립된 공간을 확보하는 것이 여러 모로 편하다. 취재팀이 가던 날 중국인 관광객들로 번잡스러웠어도 최상층의 수면실은 한국 찜질방식 분위기로 넓고 쾌적했다.
/ 조선일보 월간산 / 글·사진 안중국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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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한국산악여행협회 월간산 한국산악여행협회 설립한 양걸석 산악투어 대표 2012.1월호 산악투어 양걸석 대표, PEOPLE(인물)
[피플] 한국산악여행협회 설립한 양걸석 산악투어 대표
“정보교류해 해외 산 체계적으로 소개할 터”

“기존의 트레킹 관련 협회와는 다른 각도로 접근하기 위해 한국산악여행협회를 만들었습니다. 국내와 해외 산을 체계적으로 정리하고 접근할 수 있는 단체가 있으면 좋겠다는 바람으로 시작하게 됐습니다.”


지난 12월 16일 한국산악여행협회가 발족했다. 창립 회장은 양걸석(梁杰錫·51) 산악투어 대표다. 협회에는 10개의 여행사가 창립회원사로 가입했고 등산과 트레킹을 전문으로 하는 여행사들이다. 협회를 통해 해외 산, 특히 중국 산 정보를 교류해 알려지지 않은 명산을 효율적으로 국내 등산객들에게 소개할 예정이다. 또 국내 산행과 걷기길도 “체계적으로 상품을 발굴해 회원 여행사를 통해 판매한다”는 입장이다.


협회의 필요성을 느낀 건 해외 지자체와 공식적으로 이야기할 수 있는 창구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중국 산 트레킹이 늘어나는 만큼 중국 지자체와 소통할 일이 많은데 여행사보다는 협회를 통해 얘기를 나누는 것이 효과적이다. 또 국내 지자체에서 걷기 길이나 산행 코스 개발 시 공동으로 개발하고 참여하는 것이 가능해진다고 한다.


“국내외의 지자체를 상대할 수 있는 통로가 필요합니다. 이를 통해 해외 트레킹 수요를 국내에 유치할 수도 있고요. 그렇다고 비즈니스적으로만 접근하려는 건 아닙니다. 자연보호나 봉사활동도 하자는 데 회원사들이 공감하고 있으니까요. 해외 산도 정보교류와 공동 모객을 해서 고객들에게 합리적인 가격에 가장 좋은 산행을 제공할 예정입니다.”


양걸석 회장은 여행업계에서 잔뼈가 굵은 산행대장격의 인물이다. 10년 이상 여행사에서 근무하고 안산일대학교 관광학과에서 교수로 강의하다 1999년 트레킹 전문 여행사인 산악투어를 설립해 오늘에 이르렀다. 그는 초창기에는 현지 상품을 그대로 따르다 보니 관광인지 트레킹인지 구분이 모호했다고 한다.


“중국은 등산문화가 거의 없다고 봐야 맞습니다. 수천 년 전부터 왕이 산에 갈 때 계단을 깔았던 전통을 살려 좋은 산에 온통 계단을 깔았어요. 한국 등산객들은 그런 건 질색이거든요. 명산이니 분명 산행할 수 있는 흙길이 있을 거라 보고 한국 사람들이 좋아할 만한 코스를 찾기 시작한 거죠.”


양 회장이 직접 발로 뛰어 산행 코스를 발굴해 상품으로 개발한 산만 20개가 된다. 혼자 답사를 가면 먼저 산 아래 마을의 원로를 찾아 정보를 얻어 현지 사람을 고용해 함께 산행하며 코스를 개발한다고 한다. 한국 등산객들에게 가장 히트 친 산이 타이항산(太行山·태항산)인데 600km에 이르는 긴 산줄기이며 14개의 트레킹 코스를 개발했다고 한다. 이를 위해 30회 이상 다녀왔고 한 번 가면 열흘씩 답사를 했다고 한다. 칭다오 노산도 계단길이 아닌 산행코스를 발굴, 본지에 소개했다. 


충북 보은 속리산 자락에서 나고 자란 그는 “산 체질”이라며 손님들 입에서 멋있다는 감탄사가 나올 때가 보람되다고 한다.


양 회장은 “한국산악여행협회를 통해 더 폭넓게 산악문화를 발전시키도록 노력하겠다”고 각오를 밝혔다.


/ 조선일보 월간산 / 글·신준범 기자, 사진·염동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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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청도 노산 월간산 칭다오 노산 종주, 노산의 암릉코스 최초공개 2011.7월호 산악투어 양걸석 대장 개발 및 가이드
[해외 트레킹] 칭다오 노산 종주
기기묘묘한 호박바위들의 층암절벽 사이로
거봉 풍경구 외곽 암릉 빙 도는 코스 최초 공개

중국 칭다오(靑島)의 노산(山勞山·1,132m)은 중국 명산 중 뱃길로 가는 한국 등산객이 가장 많은 산일 것이다. 거리상으로는 연태나 위해가 훨씬 더 가까워 여객선도 자주 다니지만, 이 두 도시 주변에는 큰 산이 없다.


뱃길로 가는 칭다오 노산은 우선 요금이 싸게 든다는 게 매력이다. 위동훼리의 경우, 먼 바다로 나선 이후엔 선상 불꽃놀이도 한다. 그리고, 칭다오에서 노산까지는 1시간이면 간다. 일단 배나 여객기에서 내린 뒤에도 몇 시간을 더 버스에서 시달려야 하는 대개의 중국 명산에 비해 피로도가 한결 덜하다.


▲ 지루한 숲길을 빠져나온 뒤 뱀 머리 형상의 암봉 아래를 가로질러 종주를 시작하는 취재팀. 가운데 저 멀리 군사시설물을 머리에 인 암봉이 노산 최고봉인 해발 1132m의 거봉이다.

칭다오에는 흥미로운 명소가 또한 여럿이다. 칭다오는 독일의 조차지였기에 총독 관저를 비롯한 유럽풍의 건물이 여럿 남아 있다. 주당들에겐 세계적으로 유명한 칭다오맥주박물관이 첫째 관심거리다. 87km의 길고 아름다운 해안선 중 일부 구간엔 신혼부부가 매일 수십 쌍 사진 촬영을 오는 명소 해안도 있다. 이러한즉, 여러 명이 어울려 뱃길 낭만도 즐길 겸하여 다녀오기엔 안성맞춤인 산이라 할 수 있다.


노산은 넓이가 446㎢로 남한 최대의 산괴를 자랑하는 지리산 472㎢와 흡사하다. 산봉 중 가장 높은 것이 거봉(巨峰·1,132m)으로 지리산의 천왕봉 (1,905m)보다 한결 낮되 대부분 육산인 지리산과 달리 암봉이 많이 드러나 있다. 노산에는 모두 9개 풍경구가 있는데, 이 중 기암봉이 많은 거봉풍경구가 특히 인기가 높다고 한다.


다만 그간 이 노산 거봉풍경구 트레킹은 지나치게 획일적이라는 게 문제였다. 오로지 계단으로만 이어지는 이른바 거봉 팔괘문을 도는 트랙이 모두였다. 천편일률적인 계단으로만, 그것도 오가는 유산객 행렬에 부대끼며 걷는 팔괘문 일주 코스에서는 진정 산행다운 맛을 느끼기엔 거리가 멀었다. 이 팔괘 코스를 멀리 벗어난 종주로를 발견했다며 산악투어 양걸석(梁杰錫·50) 대장이 알려왔다.


▲ 서늘한 골바람이 불어오는 기암봉 사이의 안부를 지나고 있는 취재팀. 수박풀이 무성하여 상큼한 냄새가 풍기며 한결 시원한 느낌이었다.

양 대장은 중국 태항산(太行山·타이항산) 비경 코스인 한왕트레일을 개발, 소개하며 등산꾼들 사이에 유명해진 사람이다. 그가 자신만만하게 소개하는 길이라면 믿을 만하다며, 답사 소문을 내기 무섭게 20명이 넘는 등산꾼들이 동행을 청했다.



영암 월출산과 놀라울 정도로 비슷


칭다오는 위도가 우리나라 전북과 비슷하다. 역시, 6월 초순의 칭다오는 우리의 전라도처럼 벌써 무더웠다. 거봉유람구 매표소에서 셔틀버스로 갈아타고 해발 400m 가까운 곤돌라승강장에 내렸는데도 후끈한 열기는 여전하다. 그냥 저 곤돌라 타고 산정에 올라가 시원한 바람이나 쐬고 내려왔으면 싶은 생각이 간절한데 양 대장은 무심히 계단길로 일행을 이끈다. 그간 여러 중국 산을 다녔어도 배낭 멘 중국인들은 보기 힘들었는데, 여기 노산에서는 아예 패를 지은 중국인 등산꾼들이 뵌다. 비로소 등산하는 재미를 들이고 있는 모양이다.


▲ 산행 기점인 천지순화문이 선 광장. 셔틀버스로 여기까지 올라가며, 곤돌라가 여기서 산중턱까지 이어진다.

바람 한 점 없는 숲속 계단길을 오르던 양 대장은 도중에 한술 더 떠 오른쪽 짙은 숲 사이 좁은 길로 들어선다(갈림점 좌표 N36 09 37 E120 37 23). 너럭바위가 널린 계곡을 건너는데 물 한 방울 뵈지 않는다. 차라리 되돌아서는 게 낫지 않을까 싶게 공기가 텁텁한 숲길은 그러나 30여 분 뒤 끝났다. 갑자기 길이 가팔라지는가 싶더니 곧 정수리에 시원한 바람결이 선뜻 느껴졌다. 숨을 유난스레 헐떡이며 오르던 교포 가이드 진숙승씨는 배까지 훌렁 걷어올리며 바람을 쐬더니 연변 조선족 말투로 칭다오 자랑을 늘어놓았다.


“이래서 칭다오에 살지요. 이래서 칭다오를 피서 성지라 하는 겁니다. 매년 여름 칭다오를 찾는 외지 사람들이 수백만 명이지요. 이 선들 바람, 얼마나 시원합니까. 저 내륙에선 꿈도 못 꾸지요.”


노산은 중국의 1만8,000km나 되는 해안지대의 산중에서 유일하게 해발 1,000m가 넘는 산이다. 유달리 시원한 산일 수밖에 없다.


시원한 바람에 땀이 식자 비로소 바로 앞에 맹독의 코브라마냥 고개를 치켜든 기암이 눈에 든다. 그 옆으로, 뒤로 끊임없이 펼쳐진 바위, 바위들. 이렇게 두루뭉술한 바위 봉이 끊임없이 늘어선 풍경은 처음이다. 첫 대면에 연상되는 산은 우리나라 영암의 월출산이다. 부분만 떼어놓고 보면 영락없이 월출산 구정봉 일대의 기암군을 맞대면한 느낌이다.


이 노산의 화강암은 약 1억만 전 형성된 것이라 한다. 영암 월출산 바위도 중생대 백악기 말인 약 9,000만 년 전 지하로 관입된 홍색장석화강암이라 하니, 이를테면 나이나 성격이 비슷한 두 산이고, 그래서인지 바위 생김도 그렇게 비슷한 모양이다.


바위 모서리들이 마치 일부러 다듬은 듯 달걀처럼 둥그스름한 것조차도 흡사하다. 이와 같은 바위 형체의 생성 연원도 아마 같을 것이다. 지질학자들 말을 빌면, 땅속에 관입한 화강암이 지각운동이나 표토 침식 등으로 지표 가까이 올라오면 하중 압력이 줄어들며 체적이 급팽창한다. 이 때 암석 표면에 수평이나 수직으로 균열이 간다. 이를 절리(節理)라 하며, 이 절리 면을 따라 수분이 침투, 풍화작용이 진행돼 결국 사방으로 쪼개지고 모서리는 풍화돼 둥그스름한 호박돌이 된다는 것이다.


▲ 노산 종주코스 중간의 조망 바위. 저 멀리 노산 정상부가 뵌다.

온갖 모양의 크고 작은 호박돌들이 상상조차 하기 어려운 기묘한 모양으로 얽히고설킨 이 산의 암봉 형상에서 사람들은 영적 자극을 받는 것일까. 노산이 세상의 오묘한 이치를 밝힌 도교의 성지가 된 것은 이와 같은 바위 모양새와 연관이 깊을 것이다.


산 이름 자체는 도교적이지 못하다. 노산의 노(山勞) 자는 산 험할 노자이니 산이 다만 그렇듯 험하다는 뜻이겠다. 혹자는 진시황이 불로초를 구하기 위해 기가 충만한 이 산에 신하들을 파견, 그때마다 백성들 노고가 심했다고 하여 산 자 옆에 일할 노(勞)자를 붙인 것이라고도 해석한다.


기암봉과 기암봉 사이의 넓은 안부의 그늘지대로 올라서자 시원한 바람결에 절로 눈이 감길 정도다. ‘바로 이 맛이야’를 몇 번 거듭해 내뱉게 하는 냉풍이 골짜기에서 치밀어 오르고 있다. 게다가 주변의 무성한 수박풀에서 상큼한 냄새가 나며 더욱 쾌적한 느낌이다.


숲길과 바윗길 번갈아 올라


길은 바위지대에서 다시 울창한 숲속으로 빠져든다. 노산 거봉풍경구 암릉 종주는 이렇듯 숲지대와 바위지대를 번갈아 드나드는 산행이 된다. 


▲ 1 노산 종주길은 아직 정비가 덜 되어 보조 로프를 이용해 당겨주어야 하는 곳도 있다. 2 노산 팔괘문 트랙의 바위굴.

다시 나선 기암 능선에서는 고도가 높아진 탓에 펼쳐지는 풍경도 한결 넓다. 날이 무더워서일까. 하늘은 푸르른데도 먼 데의 암봉들은 희뿌연 이내가 마치 반투명의 반지(半紙)를 들이댄 듯 희뿌옇게 가리고 있다. 양 대장은 숲그늘이 나오면 그 숲 속으로 배어드는 선들바람을 맞으며 앉아 쉬다가 땀이 식으면 다시 멋진 조망이 펼쳐지는 암릉지대로 나서기를 반복하며 길을 이었다. 양 대장은 모두들 만족스러우시냐며 몇 번을 물었고 그때마다 이구동성으로 최고라며 일행들은 엄지를 세웠다. 그러자 비로소 양 대장은 이 노산 비경길을 찾아내는 데에 큰 도움이 되었다는 현지 주민을 소개한다. 


▲ 노산 종주 코스를 개발, 소개한 산악투어 양걸석 사장(왼쪽)과 현지 가이드로서 자신을 만년청(万年靑)이라 소개한 60세 중국인.

고도가 높아지며 산릉도 가팔라졌고, 길도 간혹은 윗사람이 손을 잡아주어야 할 만큼 가파른 곳이 나타났다. 기암군과 짙푸른 숲이 서로 교묘히 모자이크된 산록 풍경으로 걸음은 자꾸만 느려진다. 양 대장은 이러다간 셔틀버스 놓칠지도 모른다며 재촉한다.
중국인 약초꾼이 무언가 뿌리를 캐고 있는 널찍한 숲속 안부에서 가져온 김밥을 들고 나서 조금 더 숲길을 걷자 돌 계단길이 나온다. 예의 그 팔괘 길로 접어든 것이다.


단조로운 계단길이지만, 역시 어렵사리 계단을 놓아가며 길을 이은 데는 다 이유가 있었다. 조망처마다 펼쳐지는 풍경은 노산이 아니면 볼 수 없는  독특한 것이었다. 황산의 그것 같은, 하늘을 찌를 듯한 기세의 암봉은 여기에 단 하나도 없다. 모두가 뭉글뭉글, 둥글둥글, 삐죽한 데라곤 없는 바윗덩이들뿐이다. 주먹만 한 것 단 하나라도 빼면 그냥 와르르 무너질 듯한 호박돌 탑들로 산비탈 전체가 빼곡하다.


큰 바윗덩이들이 서로 머리를 맞대며 생긴 굴들도 지천이다. 그중 독특한 것들을 골라 건(乾), 태(兌), 이(離), 진(震), 손(巽), 감(坎), 간(艮), 곤(坤)의 팔괘 문을 삼았고, 그것을 따라 도는 탐승로가 노산 명물이 되었다. 그것을 모두 빠트리지 않고 한 바퀴 돌면 큰 복이 온다던가.


▲ 일반인이 갈 수 있는 최고봉인 단로봉 정상.

간문을 향해 오르는데 길 오른쪽 어느 암벽 면에는 노자(老子)의 <도덕경(道德經)> 전문이, 그 위의 암벽 면에는 일필(一筆)로 단숨에 그려낸 듯 소를 탄 도사의 그림이 암벽 면에 새겨져 있다. 도가(道家)나 불가(佛家)의 수행자들이 마음을 소에 비유해 득도의 과정을 설명하는 심우도(尋牛圖)의 하나다. 저 암벽면의 도사는 이미 소 길들이기를 마치고 소 등에 편히 앉아 피리를 불고 있다. 소의 꼬리조차도 잡지 못하고 허둥대는 중생들을 위해서는 저 멀리 암벽 면에 커다랗게, 어림짐작으로도 폭이나 길이가 10m는 넘지 싶게 큰 복 복(福)자를 새겨두었다. 그대, 득도는 어려우니 복이라도 많이 받아가라는 뜻이렸다.



‘곤돌라 타고 하산할 걸’ 후회


간문에 올라서자 또 시원한 바람이 축복처럼 불어온다. 우리 중생은 이만으로도 만족이다. 지금 저 아래 칭다오 시내는 올 들어 제일 높은 섭씨 32도라는데, 여기 노산에서는 숲 그늘에 들어서기만 해도 서늘하다.


▲ 노산의 트레이드 마크가 되다시피 한 노산 영기봉 정상부의 정자각과 주변 암릉들.

이제 그만 볼 것 다본 것 같은데, 양 대장은 우직하게 또 앞장선다. 1,132m의 노산 최고봉 거봉(巨峰)은 꼭대기에 군 시설물이 들어서서 못 가지만 그 다음 봉인 높이 1,098m의 단로봉(丹爐峰)은 꼭 올라가봐야 한다며.


뻐근해진 넓적다리를 주물러가며 그의 뒤를 따라 오른 단로봉 정상 조망은 과연, 그가 회심의 미소로 펼쳐 보일 만했다. 그러나 내려갈 일이 걱정이다. 올라 온 길을 고스란히 다시 500m 가까이 내려가야 한다. 그랬다가 영기협의 선문(仙門)을 향해 긴 계단길을 걸어 오르는 데서 일행 몇몇은 지쳐 걸음마다 무릎팍을 짚어야 했다. 평택여산회(회장 오난영)의 50대 회원들은 까딱 않고 선문 옆 영기봉(旗峰) 정상 구경까지 하고 내려온다.


긴 계단길을 내려가 마지막 문인 이문을 지난 뒤 양 대장은 단호해졌다. “자, 여기서 결정 내려야 합니다. 능선길로 돌아가면 두 시간쯤 걸리는데, 빨리 걸을 자신 없는 분은 저 아래 곤돌라 타고 내려가셔야 해요.”


▲ 1 하산길에 정자각 옆 난간에 주욱 늘어선 평택여산회원들.
2 노산의 천지순화비 광장에서 팔괘문 트랙 이문 아래의 산중턱으로 이어지는 곤돌라.

3분의 1쯤은 곤돌라 쪽일 줄 알았으나 진  가이드와 여성 회원 한 사람 외엔 모두 능선길을 따른다. 양 대장은 “오전에는 서쪽 능선에 햇살이 비쳐 멋지고, 오후에는 동쪽 능선에 노을이 들어 멋지다”며 이렇게 시계 반대방향으로 도는 종주를 기획했다. 그의 말마따나 계단 하산길 오른쪽으로 빙 돌아 내려가는 능선길 중간중간, 동릉의 불그스레한 암봉군 풍경이 멋지게 펼쳐지긴 했다. 그러나 이미 신물 나도록 보아온 바위였다. 일행 반 이상이 곤돌라 탈 걸, 하고 후회하는 것 같다. 무엇보다 아직 길 정비가 완전히 되지 않아, 툭하면 숲속 길에서 머리며 얼굴을 나뭇가지가 찔러 곤욕스러웠다.


길게 능선을 따르다가 이윽고 왼쪽으로 꺾어 20여 분 내려가자 천지순화 네 글자가 새겨진 곤돌라승강장이다. 8시간 15km에 걸친 우리의 노산 종주길은 이렇게 무사히 끝냈지만, 다른 이들에게 하산길은 능선 대신 곤돌라를 타라고 권하고 싶다.



산행 길잡이


지도도 없는 바위산 길… 가이드 없이는 위험


▲ 위동 페리 선상 불꽃놀이

노산 종주길은 혼자서만 간다는 것은 무리다. 중간에 리본들이 붙어 있기는 하나 갈림길도 많거니와 자칫 잘못 들었다가는 절벽을 만나 오도가도 못 하게 되기 십상이다. 자세한 등산지도가 나와 있는 것도 아니다. 그러므로 이 트랙을 가려면 반드시 길을 잘 아는 이가 앞장서야 할 것이다. 팔괘문 코스를 도는 데는 아무 문제가 없다. 팔괘문 코스 일주엔 대개 3시간쯤 잡는다. 산악투어는 노산 종주 코스 전문 현지 가이드를 두고 있다. 홈페이지  www.sanaktour.com 문의 02-730-7227.


위동해운은 칭다오행(뉴골든브리지5호, 2만9,554톤·정원 660명) 여객선과 위해행(뉴골든브리지2호, 2만6,473톤·정원 731명) 여객선을 1주일에 3회씩 운항하고 있다. 칭다오행은 매주 일·화·목요일 오후 5시 출발해 다음날 오전 9시 칭다오에 도착, 위해행은 매주 월·수·토요일 오후 7시 인천을 출발해 다음날 오전 9시에 위해에 도착한다. 여객선 내에는 2인실·4인실 외에 8~16인용과 48~64인용 단체객실도 있다. 식당(1인당 4,000~7,000원) 외 카페, 노래방(마른안주 + 캔맥주 5개 포함 1시간 2만 원), 무료 영화관, 사우나, 면세점 등을 운영하고 있어 지루하지 않은 밤을 보낼 수 있다. 문의 032-3271~6753, www.weidong.com.


/ 조선일보 월간산 / 글·안중국 편집장, 사진·허재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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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태항산 월간산 타이항산 한왕트레일, 한왕트레킹 2011.1월호 산악투어 양걸석 대장 개발 및 가이드
[특파원 르포] 최초공개! 타이항산 한왕(韓王)트레일
20억 년 대협곡의 웅혼함에 매혹되다
도화곡, 환산선 탐승에 이어 ‘대암봉 병풍’ 일주

산악투어 양걸석(梁杰錫·50) 대장은 고향이 타이항산(太行山)인 사람 같다. 그렇지 않고서야 그렇게 타이항산 알리기에 열심일 수 없다. 물론 본업이 여행업이지만 그의 타이항산 사랑은 다만 그런 직업 의식만으로는 설명하기 어렵다. 차창에 기대어 졸다가도 타이항산 얘기를 시작하면 그는 어린 시절 고향의 아름다움을 자랑하는 소년처럼 얼굴이 빛난다.


▲ 한왕트레일의 능선 구간에 올라 지나온 협곡을 바라보다가 발길을 되돌리는 취재팀의 장익진씨.
그는 3년 전 타이항산과 첫대면했고, 그 즉시 타이항산과 사랑에 빠졌다. 열 번쯤 찾아갔고, 한 번 갈 때마다 열 번 이상 타이항산 곳곳을 누볐다. 그 끝에 그는 중국인들도 잘 모르고 있는 타이항산만의 비경 트레킹 루트를 엮어냈다. 타이항산 동서쪽의 옛 주민들이 산줄기를 가로질러 넘나들던 옛길이며, 심지어는 염소들이나 다니던 절벽 중간 길을 더듬어 오가며 타이항산에서 자신만의 길을 창조했다.

그렇다. 그의 타이항산 작업은 단순한 엮기가 아니라 창조, 혹은 창작이라고 말해야 옳다. 타이항산은 중국 내륙 한가운데, 우리의 백두대간이 영동과 영서지방을 나누었듯 남북으로 무려 600km 길게 뻗으며 산둥성(山東省)과 산시성(山西省)을 나누었다.
그의 타이항산 트랙은 백두대간의 남한 쪽 길이와 거의 맞먹는 이 거대한 산줄기 여기저기를 오랜 기간 더듬으며 수없는 시행착오를 반복한 끝에 완성한 것이기에, 다만 엮은 것이 아니라 창작에 가까운 것이라 말할 수 있는 것이다. “공 들이고 정 들인 곳이라선지, 거기는 꼭 내 산, 내 길, 내 새끼 같아요” 라고 양대장은 말한다.

칭다오(靑島)에서 타이항산 동록의 임주시(林州市)에 이르기까지 이틀에 나누어 열두어 시간 달린 버스 여행은 중국 대륙의 넓이를 체감케 했다. 어쩌면 그리도 똑같은 풍경의 연속인지. 황갈색의 대지가 끊임없이 다가와서는 뒤로 멀어져갔다. 고속도로변의 방풍림 삼아 조성한 듯한 엉성한 숲조차도 부산~평양에 버금가는 900km의 긴 거리 내내 같은 모습이었다. 그래서일까. 변함없고 단조로운 대평원을 가로지른 끝에 만난 타이항산은 저 멀리 부우연 이내의 띠 위로 치솟기도 해서, 현실의 산이 아니라 거대한 신기루 같아 보였다.

▲ 석양 무렵 태항 대협곡 위의 암반지대를 걷고 있는 취재팀. 억겁의 세월이 암반층으로 켜켜이 내려앉았다.
부산~평양 간 거리만큼 달려 ‘산수갑수 타이항산’으로

임주시내의 도로변 가로등마다엔 ‘산수갑수(山水甲秀)’ 팻말이 걸려 있다. 산수가 매우 뛰어나다는 뜻이라고 양대장은 알려준다. 역시 타이항산을 자랑하는 글귀다. 타이항산이란 이름 가운데 ‘行’ 자의 우리 발음은 다닐 행이거나 항렬 항이다. 곧 큰 산이 줄을 이어 서 있다는 뜻으로 사람들이 타이항산이라 부르기 시작한 것 같다. 우리나라 등산동호인들은 태항산이라 즐겨부른다.

<열자(列子)>에 나오는 우공이산(愚公移山) 고사의 무대가 바로 이곳 타이항산이다. 타이항산을 발해만으로 옮기겠다고 나선 90세 노인을 모두가 비웃었으나 옥황상제가 감동해 산을 옮겨주었다는, 중국다운 전설이다.

임주시를 가로지른 뒤 타이항산록에 이르러 버스는 평평한 고속도로만 달리다가 낯설다는 듯 힘겨운 S자 등행을 시작, 터널을 두 개 지난 뒤 이윽고 타이항산중의 깊은 계곡에 든다. 기독교인들이라면 타이항산의 첨봉들을 보고 바벨탑을 연상할 것이다. ‘2개 혹은 3, 4개의 단을 지으며 쌓아올린, 거대한 석성 같은 수직고 500~1,000m 암봉들의 집합체’라고 타이항산을 요약해 말할 수 있다. “20억 년 전 최초로 융기했고, 그 다음 10억 년 전, 또 5억 년 전쯤에 다시 솟아오른 한편으로 20억 년 내내 침식을 받아서 지금 같은 모양이 되었다고 합니다”라고 양대장은 전한다.

첨봉으로 둘러싸인 계곡 가운데, 학교인 듯한 큰 건물이 있는 마을의 음식점 운해산장(雲海山莊)에서 늦은 아침식사를 마친 뒤 양대장은 일행을 우선 도화곡(桃花谷)으로 이끈다. 중국인들이 비경임을 말하고자 할 때 흔히 동원하는 무릉도원의 그 도(桃) 자를 쓴 도화곡이다. 양대장은 우선 이 도화곡을 맛보기로 내놓아 일행의 반응을 살피려는 것이다. ‘↖왕상암, 도화곡↗’ 표지판이 걸린 삼거리에서 버스는 한결 더 좁아지는 도화곡 쪽 갈림길로 접어든다. 그 도로의 끝에서 도화곡 탐승로의 시작점인 매표소가 나선다.

이곳은 우리나라의 전라남도와 위도가 비슷하다. 해서, 전라도가 11월 30일 지금 초겨울이듯 여기도 쌀쌀한 겨울날씨다. 나뭇잎도 모두 져버린 이런 겨울날 계곡 풍류를 찾는 이는 우리나라처럼 중국에도 없다. 매표소조차도 비어, 우리는 그냥 골짜기 안으로 접어든다. 소리를 좀 크게 지르면 돌 몇 개쯤은 투닥, 탁 하고 굴러내릴 것처럼 가파른, 설악산 적벽처럼 깎아지른 절벽이 겹으로 늘어선 좁은 협곡이다.

복사꽃은커녕 나뭇잎 하나 남아 있지 않은 초겨울 바위 협곡은 웅장하나 을씨년스럽다. 이 지역 지질이 ‘12억 년 전 형성된 석영사암’임을 야트막한 오석(烏石) 해설판이 일러준다. 낮은 속삭임조차도 울림으로 담아내는 거대한 절벽들-. 나팔관처럼 절벽이 둘러선 황룡담 왼쪽 옆 잔도(棧道) 초입에는 큰 북이 세 개 걸려 있다. 두둥-. 누군가 북을 두드리자 온 계곡이 공명하며 울린다.

굵은 철근을 절벽에 박고 발판을 댄 잔교 위로는 바위가 툭툭 튀어나와 있어서 몇 걸음마다 허리를 굽혀야 한다. 일행은 절벽 자체보다 이 투박하고 아찔한 잔교가 더 흥미롭다. 잔교 위로 오르자 바위 턱에 가두어진 물이 깊이를 알 수 없는, 섬뜩한 암청색 소를 이루었다. 그 위를 가로질러 놓인 엉성한 구름다리를 지나 다시 절벽잔교를 오른다.

▲ 1. 한왕트레일에서 만난 남근석. 2. 한왕트레일 능선길의 천주쌍봉. 3. 타이항산 옛주민들이 넓은 바윗돌로 정성들여 쌓고 다듬어둔 한왕트레일의 고갯길. 급경사이지만 짐을 지고도 그리 숨가쁘지 않게 오르내릴 수 있게끔 갈짓자로 경사를 죽였다. 4. 관일대에서 본 오후의 타이항산 첩첩산릉 풍경.
용이 날아오른 협곡이라는 비룡협(飛龍峽), 용이 여의주를 문 형상이라는 함주(含珠), 두 마리 용이 여의주를 희롱하는 형상이라는 이룡희주(二龍戱珠)를 지나도록 일행에게서는 아무 탄사도 나오지 않는다. 장가계며 무이구곡, 황산 같은 중국 절경을 최소한 두어 군데는 가본 이들에게 계곡 바닥에 퍼런 청태가 낀 이 도화곡이 봄도 아닌 겨울에 그렇게까지 감탄스러울 수는 없는 것이다. 아무도 경치가 별것 아니라고 말한 바는 없지만, 양대장은 잘 알겠다는 듯 걸음을 빨리 한다.

양대장만이 아는 타이항 대협곡 최고의 전망대로 안내

9개 연꽃 같은 폭포라는 구련폭포(九蓮瀑布)를 지나자 절벽 위에 ‘도화면(桃花面)’ 팻말을 내건 민가가 뵌다. 그 위 주차장에는 중국인들이 빵처럼 생겼다고 해서 빵차라고 부르는 소형차 두 대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여기부터 23km 산 중복을 가로지르는 이른바 환산선(環山線) 길로 양대장은 일행의 눈높이를 다시 체크하려는 것이다. 원래는 마을과 마을을 잇는 산복도로였으나 양대장이 임주시에 제안해 전망대도 서너 군데 만들고 환산선이란 이름의 관광도로로 삼았다.

그가 보여주려는 것은 거대한 계곡의, 그가 중국의 그랜드캐년이라 이름붙인 이 타이항 대협곡의 웅장함이지만 일행은 전혀 엉뚱한 것에서 탄복한다.

“햐아, 저것봐라. 저 절벽 끄트머리가 바로 밭 경계여!”

▲ 1. 도화곡 황룡담 옆의 북. 누구든 마음껏 쳐도 되며, 바위 절벽의 울림이 멋지다. 2. 타이항산의 농가지붕은 한결같이 넓적한 바위 너와로 지붕을 얹었다. 3. 타이항대협곡 가운데 마을의 운해산장. 주변이 빙 둘러 높디높은 절벽이다. 4. ‘태항산 도사’라 해도 무리없는 산악투어 양걸석 대장. 5. 대암봉을 병풍으로 두른 적수채마을.
천야만야 아찔한 절벽이 시작되는 평탄면의 가장자리 끝을 따라 둑을 쌓아둔 그 밭뙈기들을 보는 순간 눈이 시큼하게 아려온다. 자칫 실족하면 시신조차 수습하기 어려울 정도로 까마득한 절벽 위 단 한 뼘의 땅이라도 더 확보해 작물을 심어야 했던 이 산중사람들의 누천 년 고되었을 삶이 그 밭뙈기 저편에 투영된 까닭이다.

가로 2m, 세로 1m 남짓한 커다란 판석을 기와 삼은 돌집 마을도 신기한 구경거리다.

여기 타이항산은 모든 게 층층이다. 봉우리를 이룬 바위절벽도 얇은 판석으로 층층, 그 기슭의 계단식 논도 그 지형에 따라 층층이다. 지질학자들이 이것을 판상절리(板狀節理)라 부르던가. 중국의 장가계가 또한 이와 비슷하다. 다만 규모에서는 이곳과 비교가 되지 못한다고 장가계를 본 사람들이 입을 모은다.

“미국에 그랜드캐년이 있지만 사막 한가운데 있어서 좀 삭막하잖아요. 반면에 여기 중국 타이항산은 그랜드캐년 못지않게 웅장한 데다 봄이면 꽃이 피고, 여름이면 푸르른 녹음이 지고, 가을에는 붉은 단풍으로 치장하고, 겨울에는 백설로 뒤덮이니 훨씬 더 낫지요. 안 그런가요? 그리고 날씨 운도 좋은 산이에요. 연중 60~70%는 날씨가 맑답니다.”

▲ 1. 한왕트레일 도중의 남반촌을 지나 왕망령을 향해 오르는 일행. 2. 남반촌의 한가로운 소들. 3. 표정이 순하디 순한 남반촌 주민. 4. 한왕트레일의 기암 중에도 으뜸인 ‘목 긴 여인상’. 5. 왕망령 정상 일대에 조성된 관광 조망대.
7km쯤 달렸을까. 환산선 도로 중간의 고갯마루에 다다라 차를 내린 뒤 양대장은 전망
대 위로 올라 타이항산 대협곡을 자랑한다. 적갈색의,  1,000~2,000m 깊이로 패인 거대한 협곡은 눈을 아슴하게 떠도 그 끝이 가늠하기 어려울 만큼 광대하다. 억만 년 누적된 세월의 단면을 한순간에 들여다보는 기분-. 두어 차례 탄성이 터지고, 양대장은 미소짓는다. 용기백배한 양대장은 진짜 절경은 저 위에 있다며, 하산길이 급경사이고 험하니 저물기 전에 마쳐야 한다며 일행을 채근한다.

어느새 오후 1시30분. 양대장을 우리말로 형님이라 부르는 아랫마을 40대 중국인이 길을 인도한다. 팻말은커녕 표지리본조차 없는 희미한 길을 짚어 오른 지 한 시간여.

서늘한 냉기가 감도는 그늘 속 협곡을 지나자 찬란한 오후 햇살이 비추는 잘록이 위다.
거기서 왼쪽으로 30여 m 나아가 양대장은 “이리로들 오세요!” 라고 거듭 외친다. 도로변 출발점 1,060m에서 1,460m로 400m쯤 고도를 올린 이곳에서의 타이항산 대협곡은 일행 모두가 한결같이 야아, 하며 감탄사를 내지르게 하는 절경으로 펼쳐진다.

“이제 또 뭘 보러, 어딜 가야 하나” 하는 다소 과장된 탄식마저도 내뱉게 하는 장관을 앞에 두고 우리는 소찬이나마 점심 보따리를 편다. 일본의 어떤 식당은 담아내는 그릇에 따라 음식 값을 달리 받는다던데, 그렇다면 타이항 대협곡 암반을 그릇 삼아 음식을 펼쳐놓은 우리는 천하에 둘도 없는 최고가의 상찬을 드는 셈이다.

인수봉 두 배만 한 대암봉들 병풍처럼 늘어서

대협곡 조망처 이후 길은 다소간 지루하고 재미없어졌다. 무엇보다 끊임없이 얼굴을 성가시게 찔러대는 나뭇가지 때문이다. 두어 사람이 짜증을 내자 “외부인에게는 최초 공개하는 것”이라며 자랑하던 양대장의 얼굴에 다소간 당황한 기색이 어린다. 중간에 중국 특유의 오랜 산간 돌너와집 마을이 있으므로 길만 다듬으면 훌륭한 탐승 코스가 될 것이라며 양대장을 위로한다. 

잡목 길을 빠져나온 뒤, 양대장은 아예 널찍한 산간 마을길을 따른다. 그 끝에 이제 막 주변을 다듬고 있는 중인 널찍한 암반지대가 나선다. 그 남쪽 옆 공간을 가리키는 양대장. 마침 석양 무렵이어서일까. 거대 협곡이 드러내는 장구한 세월의 무게에 찰나 같은 삶의 덧없음이 일깨워져, 일행은 가만히 서서 바라보며 침묵한다.

억겁 세월의 층을 거슬러 해발 1,600m 이곳 벼랑 위까지 치밀어오른 골바람이 드세다. 여기는 황금 햇살이 뿌려지고 있는데 천길 벼랑 저 아래 협곡엔 짙은 어둠 같은 그늘이 고여 있다. 섬뜩한 두려움으로 일행은 다시 침묵한다.

여긴 아마 오래지 않아서 입장료를 받는 데가 될 거라며 양대장은 하산길목으로 이끈다. 아무 표식도 없는 어딘가로 내려서자 어찔하니 현기증이 날 만큼 급경사 돌계단길이 시작된다. 늑장을 부렸다면 큰일 날 뻔했다며 난간도 없는, 잡을 것도 마땅찮은 계단 길을 적당한 간격을 두고 내려갔다. 하산을 마치기 전 끝내 어스름이 스몄지만, 어느덧 완경사 산록이었고 대신 우리는 대협곡의 장엄한 노을빛을 마주할 수 있었다.

밤을 도와 직선거리로 60km쯤 남쪽, 하이난성(海南省) 휘현시의 백천(百泉)국제대주점에서 1박한 후 양대장은 비로소 회심의 카드를 꺼내든다. 휘현시 한구촌(韓口村)이란 마을에서 시작해 왕망령(王莽嶺) 지나 전망대까지 갔다가 다시 한구촌으로 돌아 내려오는 원점회귀형식의 트레일이다. “제가 내 새끼 같다고 했던 바로 그 한왕트레일 코스”라며 고개 숙여 차장 밖 산줄기를 바라보는 양대장 눈이 반가움으로 차오른다. 

“한왕트레일은 타이항산 특유의 기암절벽, 장엄한 대협곡, 그리고 전형적인 중국 산골마을 풍경까지 아우르는 멋진 길이에요. 취재팀은 물론이고 관광단 모두 통틀어서 아직 열 팀도 다녀가지 않았지만, 사람마다 최고, 천하절경이라고 하대요. 이게 알려지면 아마 장가계 같은 데는 텅 빌 겁니다.”

어제처럼 날씨운은 좋다. 구름 한 점 없이 푸르른 하늘이고, 그 아래 타이항산 기암봉이 기교를 다한 윤곽선을 그려내고 있다. 아이들이라면 필경 마법의 성채라거나 전설 속의 거인 같은 상상과 더불어 저 거대 암봉군을 바라볼 것이다. 어제의 급경사 하산길에 데어, 공연히 다리를 주무르며 그냥 버스에서 기다리겠다던 두 사람도 서둘러 행장을 차려 나선 것으로 보아 우리는 분명 마법에 걸린 것 같다.

“청 말기에 한씨 성을 가진 대신이 박해를 피해 여기 숨어 들어왔다고 해서 한구촌이라 한답니다.”

일제 때 모택동군과 우리 독립군이 합동으로 일본군과 대치하며 전투를 벌이기도 했던 곳이라고 양대장은 덧붙인다. 멀리서 보면 하나로 보였던 암벽이 가까이 다가가자 둘, 혹은 세 겹으로 쪼개어진다. 그런 틈새 협곡이 지천이고 암벽 여기저기엔 길고 깊어 뵈는 동굴도 여럿이니, 숨어들어 항전하기엔 적격이었을 것이다.

▲ 환산선 중간의 조망처에서 본 타이항 대협곡의 동사면 풍경.
걸어 올라야만 체감할 수 있는 타이항 대협곡의 웅장함

천천히, 걸음마다 높아지고 또렷해지는 타이항산릉의 기암벽들을 음미하며 1시간 남짓 계곡을 거슬러오르자 뜻밖으로 큰 마을이 또 있다. 산 입구의 한구촌만 해도 벽촌 이미지였는데, 이렇듯 깊은 산중에 이렇게 큰 마을이 있다니. 마을 이름은 적수채(滴水寨). 그대로 번역하면 물이 방울져 떨어지는 곳이란 뜻이니, 저 절벽들에서 똑똑 떨어지는 물방울들이 모여드는 곳이란 뜻일까. 산중 고을다운 이름이다. 마을부터 따지면 수직고도가 650m 남짓 되고 드러난 암부의 고도만도 인수봉에 버금갈 거대 암봉들이 병풍처럼 빙 둘러서서 마을을 장엄하게 장식하고 있다. 대사찰이 하나쯤 들어앉아도 좋겠다 싶은 아늑한 곳이다.

일행은 적수채마을의 풍광에 매혹되었다. 돌지붕 위 커다란 원통형 철망 광주리에 그득 담긴 찬란한 노란색의 옥수수 더미는 이 마을의 삶을 공연히 풍요롭고 여유로운 것으로 떠올리게 한다. 양대장은 정성들여 쌓은 길고 높은 축대 아래를 지나 마을 바깥의 너래반석 위로 일행을 인도한다. 거기에 앉아 과일을 깎아먹으며 일행은 한정 없이 노닥거린다. 이러다간 또 하산 전에 날이 저물겠다며 양대장은 채근한다.

적수채마을에서 산록을 가로지르던 길은 느닷없이 짧은 굴에 이어 긴 굴이 하나 더 나타난다. 적수채마을과 그 남쪽 2.5km의 남반촌(南盤村)을 잇는 굴이다. 동네 사람들이 오로지 망치와 괭이로 능선 옆구리를 뚫었다고 한다. 두 번째 터널은 길이가 150m 정도로 길고, 가운데에선 칠흑처럼 캄캄해서 랜턴을 켜들어야 했다.

남반촌은 적수채보다 더 아늑하고 풍요로워 보이는 마을이다. 축대 위 숲에서 한가로이 풀을 뜯던 흰 소와 눈을 맞추고 나서 대장벽 가운데로 향한다. 정오가 가까워오며 대암봉들의 음영은 더욱 뚜렷하고 짙어져, 외치지 않아도 깊은 산울림이 전해오는 것 같다.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 내기하듯, 한 걸음 옮길 때마다 성큼 다가오고 또 다가오는 대장벽. 우리는 한없이 축소되며 마이크로의 세계로 들어서는 것 같다.

어떤 봉은 감탄스러울 만큼 남성의 그것과 흡사한 데다 밑동에 자란 숲이 잎이 지며 갈색 거웃처럼 수북하다. 그런데 저기 어디쯤에 오를 틈이 있을까. 이윽고 코앞으로 다가든 암벽. 그러나 그 모퉁이와 틈새를 따라 교묘하게 축대를 쌓아 이어간 갈짓자의 등행로가 드러난다. 옛 주민들이 산 너머로 팔러갈 물건들을 이고지고 넘던 길이다. 가팔라서 걷기조차 힘든데, 쌓으려면 여러 사람이 다쳤을 것이다.

눈높이는 쑥쑥 높아져서 대암봉들 옆구리의 단이 수평으로 바라뵈기 시작한다. 그러다 여러 개 봉우리의 정수리가 내려다뵐 즈음 문득 우리는 서늘한 협곡 그늘에서 벗어나 밝은 태양광 아래로 올라섰다. 이제는 따스하고 가뿐한 수평 길이다. 뒤돌아서서, 그 폭과 높이를 온몸으로 느끼며 지나온 대장벽과 그들로 이루어진 협곡을 뿌듯이 바라본다. 차나 헬기를 타고 난짝 올라서는 저 대협곡의 웅장함을 결코 온전히 느낄 수 없을 것이다.

옆이든 앞이든 바라보는 곳마다 천하절경이고 기관(奇觀)인 가로지름길에서 발걸음은 또 한정 없이 늘어진다. 양대장은 일행의 반응에 흡족한지 한동안 내버려둔다.

양대장을 따라 기암봉 사이의 작은 고개를 꼴딱 넘자 훅 하고 숨이 막힐 만큼 불어오는 바람. 그러나 햇볕이 사양하여 따듯하고, 등 뒤로 펼쳐진 첩첩산릉은 월출산을 무더기로 가져다둔 듯 기이하여 또한 걸음이 느려진다.

키작은 풀이 곱게 자란 급경사 산록을 지나 이윽고 관광객들이 오가는 난간길로 올라선다. 난간길을 따라가자 넓은 조망대가 조성돼 있다. 화강암으로 말끔하게 단을 지은 이곳을 일러 왕망령이라 부른다고 한다. 겨울 이외의 계절엔 수많은 관광객들이 찾아오는 명소다. 서쪽 저 아래 주차장까지 버스가 올라오고, 여름 한철 운영하는 산장까지 큼직한 것이 서 있다. 차를 타고 와서 여기 왕망령 최고의 조망처인 관일대에서 보는 일출풍광이 좋기는 하겠지만, 그러나 다시 온다고 해도 우리는 한왕트레일로 걸어오를 것이다.

왕망령에서 북쪽 숲속 계단길로 한참을 내려갔다가 시계방향으로 빙 돌아나간 양대장은 “이제부터가 진짭니다” 하며 웃는다. 대암벽의 중간을 가로지르는 그 길은 멀리서 보기에 이미 살벌하다. 양대장이 먼저 앞서 가는 모습을 보더니 “난 못 가” 하며 뒤로 빠지는 시늉을 하는 사람도 있다. 결국은 모두 아슬아슬 조심스레 지나긴 했지만, 사람에 따라서는 오금이 저려 주저앉을지도 모르겠다 싶은 곳도 있다.

저 위 아까의 그 조망대에서 사람들이 마구 던져버린 쓰레기로 지저분한 곳을 지나 천주쌍봉(天柱雙峰) 옆 하산길목에 이르렀다. 이 대협곡 조망과 결별하는 것이 아쉬워서 따스한 햇살 아래 평지에 앉아 한참을 노닥거리다가 역시 양대장 채근에 일어섰다.

몇몇 사람이 “우리가 아까 올라왔던 길 아닌가?” 하고 착각할 만큼 등행로와 흡사한 모양의, 넓적한 반석으로 정성스레 만들어둔 갈짓자 트레일을 따라 우리는 긴 하산길에 접어들었다. 시시각각으로 변하는 대장벽의 색감과 계곡의 어둠처럼 짙은 고적감이 곁들여진 7km 쯤의 긴 하산길은 그러나 좀더 길게 이어져도 좋았을 것이다.

▲ 소어산공원 정상 팔각정에서 내려다본 청도의 옛 독일인 거주촌.
타이항산행 길잡이 Guide 신년 모임 겸해 위동페리 타고 가는 낭만의 여정

지난여름 한일페리의 낭만을 맛본 취재팀은 이번 타이항산행도 우정 페리 길을 택했다. 위동페리, 중국말로 웨이동페리라 부르는 인천항~청도항 간의 여객선 뉴골든브리지V호는 일단 2만9,000톤이 넘는 대형선박이라 배멀미가 한결 덜하다. 길이 196m 폭 27m로 한국에서 운항하는 페리 중 가장 큰 배라고 한다. 선내엔 식당은 물론 바다가 뵈는 카페테리아, 노래방, 사우나, 영화관 시설까지 돼 있는 한편 면세점에서 좋은 술을 싸게 살 수 있어 송년이나 신년 해맞이 모임 삼아 어울리기에 안성맞춤이다. 위동페리가 닿는 청도나 위해에서 공자묘, 태산 등, 중국 내에서도 손꼽히는 명소들로 연결되는 도로망이 발달해 갈수록 이용객이 늘고 있다. 인천~청도 간을 매주 3회 왕복 운항하며 계절에 따라 달라지기도 한다. 544km 거리를 17시간에 걸쳐 운항한다. 승무원의 친절도나 음식 수준 등이 타선사에 비해 한결 낫다는 것이 위동페리 측의 설명이다.

▲ 태항산록 임주로 가는 길에 들른 고차(古車)박물관. 사람과 말이 주인과 더불어 순장된 곳이다.
객실은 2층 침대를 갖춘 다인실 이코노미클래스(왕복 19만 원), 4인실 비즈니스클래스(왕복 22만8,000원), 2인실 로열클래스(왕복 26만6,000원) 3가지로 나뉜다. 항공료에 비해 한결 저렴하기에 위동페리를 이용한 중국 노산이나 타이항산 패키지 여행상품은 날짜가 길어지는 반면 비용이 낮아진다. 위동페리 홈페이지 weidong.com 문의 032-777-0490.

▲ 위동페리의 뉴골든브리지5호(위). 말끔한 위동페리의 4인실(아래).
위동페리를 이용한 중국 타이항산 트레킹 상품을 판매하는 국내 여행사는 여럿이다.

그러나 타이항산 관광이 아닌 한왕트레일은 아마도 산악투어가 아니고서는 효율적인 가이드가 어려울 것이다. 개별 여행은 아직 힘든 대상지다. 홈페이지  www.sanaktour.com 전화 02-730-7227.


/ 글 안중국 편집장 사진 윤제학·안중국
/ 조선일보 월간산 / 안중국 편집장 사진 윤제학·안중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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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청도 노산 KBS1 선인의 마음을 듣다, 청도 노산 2010.9.5 산악투어 협찬, 노산 트레킹 개발
선인(仙人)의 마음을 듣다 -청도 노산
◆ 방송 : 2010년 9월 5일(일) 오전 7시 20분 / KBS 1TV

중국 청도는 산둥반도 남서쪽에 튀어나온 반도 도시로 해안선 총 연장 길이가 730km에 달하며, 49개의 항구가 자리하고 있다. 중국 속 유럽이라는 별칭을 가진 청도는 이국적인 도시 모습을 만날 수 있다. 동양과 서양이 어우러진 색다른 모습 뒤에는 1897년 독일군에게 17년 동안 점령당했던 아픈 역사가 숨겨져 있다.


이번 여행의 동행자인 동양학자인 조용헌씨와 아내 강혜숙씨는 청도 역사의 흔적인 영빈관, 즉 독일총독관저로 먼저 발길을 옮겼다. 청도의 100년여의 역사를 이곳에서 한눈에 보는 듯하다. 또한 중국 혁명의 아버지인 손문(孫文, 쑨원)의 사진을 보면서 중국인들이 그를 얼마나 존경하고 있는지 다시 한 번 느끼게 된다.


중국 청도의 자랑인 노산은 청도시내에서 동쪽으로 40km 떨어진 곳에 위치해 있다. 중국의 5대 명산 중 하나로, ‘태산이 높다 해도 동해의 노산만 못하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명산으로 손꼽힌다. 바다와 갖가지 기암절벽이 어우러진 독특한 경관을 자아내며, 최고봉은 거봉(巨峰)으로 해발 1,133m이다.


조용헌씨와 아내 강혜숙씨는 노산에서 두 번째로 높은 영기봉(해발 1,080m)에 오르기로 했다. 노산은 곳곳에 도교와 관련된 신화와 전설이 많아 예로부터 신선이 사는 신성한 장소로 여겼다. 또한 만물을 형상을 여덟 가지로 표현한 주역의 8괘를 본 뜬 문들이 있어, 그 문을 따라 트레킹을 하며 노산이 도교의 성지임을 느껴볼 수 있다.


일행은 노산에서 가장 큰 도교사원인 태청궁을 찾아 산행의 안전을 기원해본다. 노산은 바위산행이라 힘들긴 하지만, 예로부터 바위에도 에너지가 깃들어 있어 산행하는 사람들에게 마음의 안정을 주고, 기를 충만하게 해준다고 생각했다. 게다가 청도 맥주의 원료로 쓰일 만큼 깨끗한 노산의 광천수가 피로를 풀어주고 산행의 기쁨을 더해준다.


◆ 동 행 : 조용헌(동양학과 교수, 칼럼니스트)과 아내 강혜숙
◆ 이동 코스 : 영빈관(독일총독관저) -> 효망저수지 -> 이룡산 -> 태청궁
        -> 이문(離門) -> 간문(艮門) -> 손문(巽門) -> 선천교 -> 육합정
        -> 영기봉 (해발 1,080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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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태항산 KBS1 우공이산의 땅, 중국 태항산을 가다 2010.7.11 탤런트 현석, 산악투어 양걸석 출연
준비중에 있습니다.
1 태항산 월간산 중국 태항산, 중국의 그랜드케년 2009.11월호 태항산 트레킹 개척, 산악투어 양걸석
[해외 명산] 중국 태항산, ‘중국의 그랜드캐년’으로 불리는 대협곡 장관
신선놀음하기 딱 좋은 산들일세

중국 태항산(太行山)은 하남성, 하북성, 산서성 3개 성에 걸쳐 남북 600km, 동서 250km로 뻗어 있는 거대한 산군이다. 예로부터 ‘태항산 800리’라 불려온 이 산맥을 현지인들은 미국의 그랜드캐년을 빼닮아 ‘중국의 그랜드캐년’이라 부르기도 한다. 한자 ‘行’은 ‘걷다, 가다’라는 의미일 때는 ‘행’으로 읽지만 ‘줄’이나 ‘항렬(行列)’의 뜻일 때는 ‘항’으로 읽는다. 태항산맥은 커다란 산이 줄지어 있다는 의미인 것이다.


▲ 미국의 그랜드캐년을 연상케 하는 태항산 대협곡. 답사단원이 구련산 천제 계단길 위에서 진입로 주변의 대협곡을 촬영하고 있다.
▲ 왕망령 관일대에서 만선산 계곡으로 내려서다 안개가 걷히면서 드러난 선경에 모두 넋을 잃은 채 바라보고 있다.

그 중 하남성과 산서성 경계 남단에 위치한 남태항의 구련산(九蓮山)과 왕망령(王莽嶺·1,655m)~만선산(万仙山·1,672m) 일원은 거대한 협곡으로 이름난 곳으로 특히 올해 들어 우리 등산인들로부터 관심을 얻고 있는 지역이다.

태항산은 덩치가 큰 만큼 명소와 절경지가 곳곳에 널려 있으나 위동항운과 하남성여유국·청도중국여행사가 공동주최한 태항산 답사는 세 개 지역으로 나뉘어 진행되었다. 천길 낭떠러지의 8부 능선 길을 따르는 구련산(九蓮山) 탐승, 장쾌한 조망을 만끽하며 능선을 따르다 선경이 펼쳐지는 계곡으로 내려서는 왕망령(王莽嶺)~만선봉(萬仙峰) 트레킹, 그리고 설악산 비선대나 비룡폭포를 오르내리듯 가벼운 분위기 속에서 비경을 엿보는 도화곡(桃花谷)~왕상암(王相岩) 트레킹이 그것이다.

위동항운의 3만 톤급 여객선인 뉴골든브리지호를 타고 밤새 서해를 가로질러 청도에 도착한 일행은 고속도로를 7시간 가까이 달려 하택(河澤)에 도착해 하룻밤 묵은 이튿날에도 새벽부터 서둘러 버스를 타고 4시간을 달리다 보니 산을 보기도 전에 엉덩이가 뻐근할 정도로 지루한 느낌이 들었다.

▲ 1 황감두를 향하다 바위절벽 위에 올라 멋진 포즈를 취하는 박주열씨. 2 전동승합차로 연결되는 후정궁. 도교사원이다. 3 120m 높이의 절벽에서 물줄기를 쏟아붓는 천호폭포. 4 거대한 절벽을 끼고 황감두로 이어지는 임도길. 5 100여m 높이의 바위벼랑은 섬뜩함과 함께 멋진 풍광을 보여주었다.

200~300m 높이의 절벽 길 따르는 구련산 트레킹

그런 상황에서도 답사단원들은 구련산 대협곡으로 들어서는 순간 탄성이 터져 나오고 딱딱한 표정은 흥분된 모습으로 바뀌었다. 수백 미터 높이의 바위 절벽이 양옆으로 펼쳐진 대협곡을 따라 산 안으로 들어서자마자 우선 천호폭(天壺瀑)이 감동을 주었다. 120m 높이의 거대한 절벽을 타고 구련담(九蓮潭)으로 떨어지는 수직폭은 무엇보다 그 규모에서 입이 벌어지게 했다.

“산서성에서 물을 끊으면 물이 말라 버립니다.”

천호폭포는 하늘에서 떨어지는 물줄기 같은 분위기를 풍겼으나 실상은 하북성 멀리서 흘러오는 물이었고, 하북성에서 물 공급을 끊는 순간 마른 절벽으로 변해 버릴 수밖에 없는 처지였다. 폭포 탐승로는 곧바로 천제(天梯·하늘 사다리)라 불리는 999개 계단으로 이어졌다. 계단 길을 올라서자 뜻밖에 널찍한 도로가 나 있고, 전동승합차가 대기하고 있었다. 

승합차를 타고 절벽 길을 5분쯤 달린 뒤 내린 곳은 후정궁(后靜宮) 도교사원 앞. 소녀 기사는 후정궁을 지나 산 임도로 접어드는 우리를 보더니 그리 가면 안 된다는 의미의 손짓을 보냈다. 탐승객들은 대개 예서 다시 되돌아가는가 싶었다.

아찔하리 만큼 높고 웅장한 바위 절벽이 길게 이어지는 홍암협곡(紅岩峽谷), 날개 활짝 펼친 독수리처럼 살벌한 외모의 유수성(劉秀城)이 올라앉은 석애구(錫崖헓句)로 이어지는 구련산 트레일은 말 그대로 하늘 길이었다. 발아래는 천길 낭떠러지요, 눈높이로는 거대한 협곡이 한없이 펼쳐졌다.

하늘 길은 그냥 밋밋한 산림도로만 따르지 않았다. 간간이 널찍한 테라스나 바위 돌출부가 나타나 멋진 조망처가 돼 주었고 답사단원들은 너나 할 것 없이 조망처에 올라 학과 같은 우아한 포즈를 취해 보았다. 그러다 똑같은 풍광에 지루해질 즈음 모퉁이를 돌아서면 데빌스 타워(Devils Tower·미국 와이오밍주)를 연상케 하는 기암이 우뚝 솟구치고, 손오공의 다섯손가락을 보는 듯한 기암이 앙증스런 모습으로 봉긋 솟아올라 있었다.

이렇게 거대한 기암절벽과 기암괴봉은 예로부터 격전의 장소로 이용되어 왔다. 전한(前漢)을 멸망시키고 신(新)나라를 세운 왕망(王莽)과 후한(後漢)을 세운 유수(劉秀)가 치열한 싸움을 벌였고, 그로부터 20세기 이상 지난 일제강점기에는 우리 광복군이 중국의 팔로군과 힘을 합쳐 일본군과 맞서 전투를 벌였던 곳이다. 지금 일행이 따르는 허릿길의 막판을 장식하는 대암벽 석애구 위에 지금도 남아 있다는 성이 약 2000년 전 후한을 세운 세조 광무황제(광무제) 유수(25~57년)가 왕망령의 신나라와 맞서기 위해 쌓았던 유수성(劉秀城)인 것이다.

후정궁을 출발한 지 1시간쯤 지났을까. 허름하고 집 주변이 쓰레기와 오물로 어수선한 민가가 나타났다. 황감두(黃龕頭) 마을이었다. 집 앞으로 몇 발짝 나아가면 천길 낭떠러지이건만 민가 주변은 개암나무와 산사과나무 열매가 주렁주렁 매달려 오히려 도원경 속 신선의 그것처럼 느껴졌다. 출출한 배를 채우기 위해 사과를 따는 모습에 답사팀을 인도하는 양걸석(산악투어 대표)씨는 “이래서 트레커가 지나가는 길에 남아나는 게 없다” 했지만 선경 속의 도인이 될지도 모른다는 ‘기대’에서인지 모두 사과 따먹기에 바빴다.

▲ 왕망령 서문에서 능선길을 따르다 뒤돌아 본 무명 암봉. 산허리를 깨내고 구멍을 뚫어 만든 괘벽공로가 보인다.
황감두를 지나면서 널찍한 산림도로 대신 좁은 산길이 나타났다. 네팔 히말라야를 트레킹하는 기분이었다. 좁은 산길은 중간 중간 허물어지거나 낭떠러지 쪽으로 흙이 깎여 나가 멍하니 걷다가는 선경 같은 화폭 속의 인물이 되고 말 것 같았다. 절벽으로 길이 끊긴 구간은 절벽을 깎아내 걸어다닐 수 있도록 길을 내놓았으나 높이가 낮아 절로 머리를 숙이거나 몸을 낮춰야 했다. 이러한 산길 대부분이 양을 치기 위해 마을 주민들이 만든 길이라 하니 놀라울 수밖에 없다.

길 위쪽의 풍광은 어마어마한 절벽이 덮칠 듯하면서도 산록이 키 작은 나무들로 숲을 이루고 있어 편안한 분위기를 자아냈다. 이런 풍광 때문일까. 예로부터 석애구가 세외도원(世外桃園), 즉 세상 밖의 무릉도원이라 불려왔던 것인가.

산골마을을 지나 잘 다듬어진 콘크리트길을 따르자 어느 순간 제법 커다란 마을이 나타나고 노변에는 노점상들이 이 지역에서 나오는 산나물과 버섯, 마른 산열매 같은 것을 팔고 있었다. 꼭 설악산이나 속리산 같은 유명산의 들머리를 지나는 기분이었다. 구련산 트레킹 종점이자 왕망령·만선산 트레킹의 기점인 주가포(周家鋪)였다.

▲ 고승포도를 따르다 만나는 기암. 중국인들이 환호성을 지를 만큼 아름다움 조망처다.

안개 속에 선경 자아내는 왕망령~만선산 트레킹

“청도에서 구련산 밑에까지 오는 데 버스로 10시간도 넘게 걸렸는데 하남성에서 산서성 오는 데는 한나절밖에 안 걸렸잖아?”

아침에 출발한 구련산 입구는 하남성이었고, 점심을 먹기 위해 머물고 있는 주가포는 산서성이었다. 22개 성(省), 5개 자치구(自治區), 4개 직할시(直轄市), 2개 특별행정구로 행정구역이 나뉘어지는 중국은 우리의 땅덩어리에 비해 97배나 되다 보니 성 하나만 해도 가로지르려면 한나절은 기본이다. 그런데 이렇게 오전 한나절에 하남성에서 산서성으로 이동했다 생각하니 한편으로 신기하다 싶었다.

5년 전부터 5억 위안을 들여 관광단지를 조성하고 있다는 주가포에서 점심을 먹고 셔틀버스를 타고 왕망령으로 향했다. 우리가 달리는 관광도로 역시 바위를 뚫는 등 난공사를 통해 만든 도로다. 셔틀버스를 타고 15분쯤 달리자 고원처럼 널찍하고 아늑한 고갯마루 아래 닿았다.

계단 길을 15분쯤 오르자 능선 너머 좌측으로 산허리를 가로지른 도로가 보였다. 절벽을 깎아 만든 괘벽공로(掛壁公路)였다. 중국인들의 ‘만만디(慢慢的)’ 기질은 태항산 곳곳에서 엿볼 수 있었다. 999계단 길과 200m 높이의 바위 절벽 길 같은 길들은 모두 오랜 세월 동안 사람 손으로 깎고 다듬어 만들어진 것이다.

그러고 보니 우공이산(愚公移山)의 배경이 되는 산이 또한 태항산이다. 90세가 넘은 우공(愚公)이 둘레 700리가 넘는 태항산을 발해만으로 옮기겠다고 하자 주변 사람들이 비웃었으나 우공은 자손 대대로 꾸준히 하다 보면 언젠가는 산을 옮길 수 있다 믿고 계획한 일을 묵묵히 했고 이에 옥황상제가 감동받아 산을 옮겨 주었다는 얘기(<列子> 湯問篇)가 나온 산이 태항산이다.

계단 길을 따라 능선으로 올라붙는 사이 대자연의 풍광에 감탄스런 표정을 짓고, 진한 감동을 참지 못해 함성을 지르는 중국인들의 모습이 자주 눈에 띄었다. 이들에게도 태항산은 새로운 풍광을 보여주는 관광지인 듯싶었다.

계단 길은 화강암 판석이 깔린 탐승로로 이어지고, 그러다 가파르거나 절벽이 나오면 철계단이 길을 이어주었다. 구련산 허릿길은 수백 길 절벽 위로 난 길이지만 시종 해발 800~900m에 불과했다. 반면 왕망령 산길은 해발 1,300m에서 시작해 1,600m대까지 높이를 올렸고, 그로 인해 기온이 한층 낮아졌다. 점심 먹기 전에는 조금만 빨리 걸어도 등줄기에 땀이 촉촉이 배었는데 지금은 꽤 가파른 계단 길을 올라도 숨만 가쁠 뿐 더위를 느낄 수가 없었다.

답사팀이 따르는 고승포도(高僧布道)는 산 왼쪽 사면을 따를 때는 기암괴봉의 절정을 보는 듯하다가 산릉 위로 올라서자 일망무제의 조망이 펼쳐지면서 왕망령 서문 뒤편의 만선산은 거대한 기암들이 경쟁하듯 솟구쳐 올라 힘이 넘치는 산수화를 보는 듯했다. 능선 길은 기암의 전시장이기도 했다. 어머니와 아들이 다정히 껴안고 있는 듯한 모자(母子)바위, 너무 좋아 입을 맞추려는 한 쌍의 개구리바위 등 크고 작은 기암들이 다양한 형상으로 능선이 만화동산 같은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었다.

그러나 왕망령은 오후 4시를 넘어서자마자 우리 눈의 호사를 시샘했는지 안개를 불러들이고, 웅관태항(雄冠太行)이란 지명의 능선마루 관광지에 도착하자 거센 바람을 몰아쳤다. 그래도 안개가 살짝이라도 걷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가지고 운남성 곤명의 ‘소석문(小石門)’ 축소판 같은 분위기의 소태항(小太行)을 지나 해맞이 명소라는 관일대(觀日臺)에 다가섰으나 안개는 오히려 더욱 짙어지고, 하산로마저 감춰 버렸다.

중국 현지 가이드로 몇 차례 답사를 해온 양걸석 사장 등 여러 사람이 길목을 찾아 나섰는데도 오리무중. 그러다 관일대를 중심으로 도는 산길을 두어 바퀴 돌고 나자 안개가 살짝 걷히면서 산길을 열어주었다.

묘한 풍경이었다. 알프스 산록을 보는 듯 파란 초원이 나타나더니 신비감 넘치는 기암 숲 속으로 들어섰다. 절벽 허릿길 앞으로는 우리의 입성을 축하해주기라도 하려는 듯 두 개의 기암이 비쭉 솟아 있고, 그 아래로는 산봉과 산릉이 겹을 이루며 선경을 자아내고 있었다. 관일대 부근에서 안개 속을 헤맬 때의 짜증스러움은 언제였냐는 듯 사라지고 대신 휘둥그레진 눈과 입에서는 신음소리와 같은 탄성이 터져 나왔다.

어둠 속의 만선산 계곡을 어렵사리 빠져나와 예정대로 오후 7시30분경 태항풍경원(太行風景苑)으로 내려섰으나, 우리를 태운 버스가 길을 제대로 찾지 못하고 헤맨 데다 고속도로에서는 앞차 고장으로 정체되면서 임주의 숙소에 도착한 것은 예정 시간을 두세 시간 넘긴 밤 12시경이었다. 그렇게 피곤한 상태에서도 새로운 풍광에 대한 기대 때문인지 답사단원들은 이튿날 아침 약속된 시각에 숙소 앞에 모여 도화곡(桃花谷)으로 이동했다.


중국 10대 협곡 도화곡과 왕상암 트레킹

중국의 10대 협곡 중 하나라는 도화곡은 왕상암(王相岩) 풍경구와 이웃해 있었다. 도화곡은 협곡 속의 비경지였다. 골짜기를 들어서자마자 ‘飛龍峽(비룡협)’이란 글자가 새겨진 절벽단애(絶壁斷崖·제1경)가 웅장하게 협곡을 이루고 있고, 곧이어 절벽을 뚫고 쏟아지는 듯한 물줄기와 너른 황룡담(黃龍潭)이 아름답게 어우러져 있었다. 철계단 길을 따라 폭포수가 흘러내리는 협곡 안에 들어서 이번에는 궁주(宮珠)라는 묘한 터가 잠시 숨을 돌리게 하더니 아예 빠져나가지 못할 만큼 골짜기가 좁아졌다가 넓디넓은 암반 뒤로 거대한 바위 절벽이 우뚝 솟구쳤다.

30~40분간 이어진 도화곡 탐승은 주렴을 늘어뜨린 듯한 인공폭포 앞에서 끝나고 빵차 드라이브로 이어졌다. 빵처럼 생겼다 하여 일명 ‘빵차’라 불리는 승합차는 우리나라의 다마스 승합차처럼 작고 문이 양쪽으로 나 있어 타고 내리는 데 수월했다. 빵차 드라이브 코스는 기암절벽을 가로지른 23km 길이의 환산선(還山線)이었다. 환산선은 산골 마을과 마을을 잇는 촌촌통로(村村通路)가 30여 년 전에 만들어졌다가 5년 전 2차선 콘크리트 도로로 변모한 것이다.

▲ 1 답사단원들이 왕망령을 내려선 다음 신선들의 거처 같은 기암괴봉 숲 속으로 들어서고 있다. 2 협곡을 따라 이어지는 도화곡 트레킹. 3 두 마리의 용이 여의주를 희롱하는 형상이라는 이룡희주(二龍戱珠). 4 절벽을 타고 내려서는 왕상암 탐승로.

구련산이나 왕망령~만선산 트레킹이 풍광 위주라면 환산선 탐승은 산간오지에 사는 중국인들의 생활도 함께 엿볼 수 있는 코스였다. 넓적한 돌로 지붕을 얹은 가옥을 드나드는 이들은 허리 구부정한 노인이 대부분이었고, 무거운 절벽의 좁은 테라스마저도 그냥 놔두지 않고 옥수수나 콩을 심어 놓은 것을 보면 고속도로를 서너 시간 달리는 동안 끝없이 펼쳐지는 대지에서 사는 이들과 달리 삶이 그리 녹록치 않으리라 싶어졌다. 그런 사실을 아는지 모르는지 빵차를 타고 20분쯤 달리다 하차해 올라선 조망대에서 기념촬영을 하는 중국 청소년들의 얼굴은 밝기만 했다.

환산선을 반쯤 돌았을 때 양걸석씨는 “여기서 계속 차를 타고 왕상암 입구까지 갈 팀과 걸어 내려갈 팀과 나누자”고 했으나 모두 도보 탐승 쪽에 손을 들었다.

절벽 길과 계곡 길을 이어놓은 왕상암 관광지는 예로부터 중국의 명인들이 숨어 산 곳이다. 지금 이름 ‘왕상암’은 중국 최초의 나라인 상(商)나라 왕(王)과 노예 출신의 재상(宰相)이 함께 거주했다는 데에서 비롯되었다 한다.

절벽 중턱에 자리 잡은 고색창연한 도교 사원을 지나 숲 속으로 들어서자 산길은 부드러워지고 곧 기암절벽 밖으로 빠져나왔다. 선경을 눈과 마음속에 듬뿍 담고 내려선 답사단원들의 얼굴은 한결 편안한 모습이었다.

남태항산 접근법

태항산 트레일 개척 주도한 양걸석씨
“옛길과 목축로를 이어 계단 길을 피하는 데 주력했습니다”

“우리 등산인들이 싫어하는 계단 길을 피하기 위해 옛길이나 목축로를 찾는 데 주력했습니다. 현지인들에게 물어보고 또 그들에게 안내를 부탁하며 길을 찾아다니자니 새로운 길을 개척하는 데 시간이 많이 걸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태항산 산길 개발에 기여한 사람은 중국인이 아닌 한국의 양걸석(梁杰錫·49·산악투어 대표)씨다. 양씨는 태항산 트레킹 코스 개발을 위해 올해 초부터 최근에 이르기까지 10여 회나 태항산을 찾고, 한 번 갈 때마다 10여 일 이상 현지에서 지내면서 우리 길 개척에 애를 써왔다.

1980년대 말부터 여행업에 몸담아오다 1999년 산악투어의 문을 열고 중국과 일본 트레킹과 관광에 주력하고 있는 양걸석씨가 추천하는 태항산 트레킹 코스는 이번에 답사한 천호폭~천제 길 대신 천문구나 노제구 협곡을 거슬러 천길 낭떠러지 허릿길로 올라붙은 뒤 200~300m 높이의 기암절벽이 도열한 홍암협곡과 유수성이 올라앉은 석애구 일원을 탐승하며 주가포까지 가서 점심식사를 하고, 이어 관광도로 대신 산길을 따라 관일대에 올라섰다가 선경을 자아내는 만선산 계곡으로 내려서는 약 8시간 코스다. 양걸석씨는 임주보다는 트레킹 기점과 차량으로 1시간 거리인 신양에 머무는 게 태항산을 트레킹하는 데 훨씬 수월하다고 귀띔해주었다.

노산과 태산 같은 중국 명산에서 풍광이 뛰어나고 자연미 넘치는 옛길 코스를 개발해온 양걸석씨는 “태항산 일원에는 아직도 비경지가 많다”며 “현재 네 가닥 정도 더 파악하고 있는데 길이 완성되는 대로 소개하겠다”고 말했다.

선박·항공으로 중국 도착 이후 차량으로 이동해야


태항산맥 답사단은 인천에서 위동페리로 서해를 가로질러 청도에 접근한 다음 하택(荷澤)~신향(新鄕)을 거쳐 구련산과 왕망령·만선산을 트레킹한 뒤 임주(林州)에서 하루 더 묵고 이튿날 도화곡과 왕상암 풍경구 답사를 마쳤다. 이후 제남에서 하루 묵은 다음 청도로 돌아온 뒤 위동페리를 타고 인천으로 되돌아오는 여정을 따랐다. 선박 이동시간은 왕복 약 30시간, 차량 이동거리는 약 1,800km로 이동시간이 길기는 했으나 중국이 얼마나 넓은 땅으로 이루어졌는지 실감할 수 있는 코스였다.

위동해운 청도행 뉴골든브리지5호(2만9554톤·660명)는 매주 일·화·목요일 오후 5시 인천 제2국제여객터미널을 출발, 이튿날 오전 9시경 청도에 도착한다. 식당(1인당 4,000~7,000원) 외에도 카페, 노래방, 무료영화관, 대중탕, 면세점을 운영한다. 문의 032-777~0490, www.weidong.com.

시간이 넉넉하지 않은 사람은 항공기를 이용하는 편이 바람직하다. 태항산 트레킹 기점은 하남성 임주시(林州市)로, 가장 가까운 국제공항은 승용차로 약 2시간 떨어진 하남성 정주시(鄭州市)이며, 임주시와 약 4시간 거리인 산동성 성도 제남시(濟南市)에도 국제공항이 있다. 정주는 대한항공이 주 2회 운항하고, 제남은 대한항공과 북방항공이 각각 주 2회씩 운항한다. 여행 문의 산악투어 02-730-7227.


▲ 중국 태항산 위치도
/ 조선일보 월간산 / 글 사진 한필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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